런던의 명소 세인트 폴 성당에서 보행자 전용다리인 밀레니엄 브리지를 건너면 그 유명한 테이트 모던 미술관(Tate Modern Museum·관장 니콜라스 세로타)이 나온다. 말이 미술관이지 칙칙하고 투박한 벽돌건물이다. 하지만 런던으로 여행온 관광객이라면 꼭 한번 들러 봐야 할 세계적인 미술관이다.
기자가 찾은 지난 6월 초에도 테이트 모던 미술관 주변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템스강을 끼고 있는 미술관 입구에는 거리 음악가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은 연주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광경이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런 한폭의 그림 같은 풍경은 지난 2000년 5월12일 테이트 모던이 문을 열면서 영국인들에겐 흔한 일상이 됐다. 21세기 시작과 함께 런던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도시재생) 일환으로 ‘가동된’ 테이트 모던은 연간 500만 명의 방문객을 끌어 모으며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고 있다.
테이트모던은 개관한지 14년 밖에 안된 신생 미술관이지만 그 뿌리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관은 지난 1947년 템즈강 남쪽 기슭에 위치한 뱅크사이드에 세워진 화력발전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Giles Gilbert Scott·1880∼1960)경이 설계했다. 수 십 년 동안 런던의 사회 기간시설이었던 발전소는 공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1981년 문을 닫았다. 발전소의 터빈이 멈추면서 벽돌건물은 20여년 동안 방치돼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이곳에 햇볕이 들기 시작한 것은 1992년부터였다. 영국의 대표적인 예술재단인 테이트그룹(테이트브리튼, 테이트 리버플, 테이트세인트이브스, 테이트온라인)은 현대미술 작품들을 전시할 새로운 미술관의 필요성을 느끼고 부지물색에 나섰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런던의 비싼 땅값 때문에 마땅한 부지를 찾지 못해 전전긍긍하던 니콜라스 세로타 관장에게 솔깃한 제안이 들어왔다. 당시 템스강의 수상버스를 이용해 출퇴근하던 부하 직원이 오랫동안 방치된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추천한 것이다. 발전소를 둘러본 그는 ‘무릎을 치며’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분관부지로 낙점하고 이듬해인 1993년 국제설계공모전 실시계획을 발표했다. 이른바 ‘테이트모던 프로젝트’다.
세로타 관장이 화력발전소에 ‘꽂힌’데에는 당시 런던 도심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시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를 주도한 테이트모던 재생협력위원회(위원장 도날드 히스롭·Donald Hyslop)는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미술관을 건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발전소 주변의 주민공동체, 기업체, 시의회 관계자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눴다.
거대한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재생하는 프로젝트는 건축가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이 ‘테이트모던 프로젝트’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수개월간에 걸친 심사 끝에 스위스 바젤 출신의 두 젊은 건축가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안이 최종채택됐다. 두 건축가는 영국의 상징인 세인트폴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발전소 굴뚝을 그대로 살리면서 기존 건물 상부에 박스 형태의 건물을 증축해 공간을 확장하는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을 제안했다. 테이트재단은 지난 1996년 도심의 문화발전소가 되길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구체적 설계안을 확정 지은 후 정부 지원금(1200만 파운드)을 받아 공사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8년 후, 지역사회의 높은 관심속에 모습을 드러낸 테이트 모던은 개관과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술관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굴뚝과 붉은색 벽돌로 만든 기념비적인 건물외벽, 그리고 세로로 긴 선을 만들어 내는 창문은 영국인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을 보면서 런던 시민들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과 재회했다. 반면 미술관 내부는 ‘열린 미술관’을 표방한 테이트 모던의 기능에 맞춰 리모델링했다. 화려하거나 위압적인 성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편하게 즐기고, 참여하고, 삶의 일부로 여길 수 있는 ‘놀이터’의 콘셉트를 구현한 것이다.
이런 테이트 모던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터빈홀이다. 전기 발전기가 있었던 곳으로 테이트 모던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헤어초크와 드 뫼롱은 미술관의 주출입구를 강변과 정면으로 마주한 북쪽이 아니라 건물의 측면에 배치했다. 이는 발전기가 사라진 텅 빈 터빈홀의 서쪽에 입구 로비를 만들어 사람들이 템스 강변의 산책로에서 내부로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새롭게 만든 천창을 통해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내부에 있어도 바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입구 로비 쪽 바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사지게 만들어 마치 무대를 내려다보는 구조의 거대한 극장과 같은 효과를 냈다. 7층 높이, 바닥 면적 3400㎡의 터빈홀은 입구 로비의 역할뿐 아니라 현대미술가들의 대형 설치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기능도 한다. 특히 터빈홀의 장소성을 살려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설치하는 ‘유니레버 시리즈’(The Unilever Series)는 테이트 모던의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루이스 부르주아, 티노 세갈, 아니시 카푸어, 아이웨이웨이, 올라퍼 엘리아슨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다녀갔다. 프랜시스 베이컨, 폴 클레,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는 갤러리와 교육 공간은 건물의 측면 3개층에 배치했다.
테이트 모던을 축으로 디자인 미술관, 국립극장 등 템스강 주변의 명소들을 한 시간 도보권으로 묶어 도심에 활력을 불러 넣으려고 했던 테이트재단의 의도는 성공했다. 런던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민간 예술재단의 기획과 지역사회의 교감으로 폐기된 산업시설을 재생시킨 사례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도날드 히스롭 위원장은 “매년 500만 명이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주변에 이들을 겨냥한 호텔과 카페, 상점, 레스토랑 등으로 연간 1억 파운드에 이르는 경제효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불꺼진 화력 발전소였던 테이트 모던은 시민들의 창의적 사고를 길러주고 도시 곳곳에 예술을 전파하는 ‘문화발전소’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것이다.
/jhpark@kwangju.co.kr
기자가 찾은 지난 6월 초에도 테이트 모던 미술관 주변은 수많은 인파로 북적거렸다. 템스강을 끼고 있는 미술관 입구에는 거리 음악가들이 일찌감치 자리를 잡고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산책을 즐기던 시민들은 연주에 맞춰 어깨를 들썩이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광경이 이방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테이트모던은 개관한지 14년 밖에 안된 신생 미술관이지만 그 뿌리는 6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술관은 지난 1947년 템즈강 남쪽 기슭에 위치한 뱅크사이드에 세워진 화력발전소로 쓰였던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 런던 중심부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자일스 길버트 스코트(Giles Gilbert Scott·1880∼1960)경이 설계했다. 수 십 년 동안 런던의 사회 기간시설이었던 발전소는 공해 문제가 대두되면서 1981년 문을 닫았다. 발전소의 터빈이 멈추면서 벽돌건물은 20여년 동안 방치돼 범죄가 끊이지 않는 도시의 흉물로 전락했다.
세로타 관장이 화력발전소에 ‘꽂힌’데에는 당시 런던 도심의 역사적인 장소들을 시민들의 새로운 삶의 터전으로 리모델링하자는 지역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 테이트 모던 프로젝트를 주도한 테이트모던 재생협력위원회(위원장 도날드 히스롭·Donald Hyslop)는 단지 하나의 건물이 아닌 지역사회와 소통하는 미술관을 건립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발전소 주변의 주민공동체, 기업체, 시의회 관계자들과 꾸준히 대화를 나눴다.
거대한 화력발전소를 미술관으로 재생하는 프로젝트는 건축가들의 흥미를 불러 일으켰다. 현대건축을 대표하는 세계 각국의 건축가들이 ‘테이트모던 프로젝트’에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수개월간에 걸친 심사 끝에 스위스 바젤 출신의 두 젊은 건축가 자크 헤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Herzog & de Meuron)의 안이 최종채택됐다. 두 건축가는 영국의 상징인 세인트폴 대성당과 마주보고 있는 발전소 굴뚝을 그대로 살리면서 기존 건물 상부에 박스 형태의 건물을 증축해 공간을 확장하는 심플하면서도 모던한 디자인을 제안했다. 테이트재단은 지난 1996년 도심의 문화발전소가 되길 바라는 시민들의 염원을 반영한 구체적 설계안을 확정 지은 후 정부 지원금(1200만 파운드)을 받아 공사에 들어갔다.
그로부터 8년 후, 지역사회의 높은 관심속에 모습을 드러낸 테이트 모던은 개관과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미술관으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거대한 굴뚝과 붉은색 벽돌로 만든 기념비적인 건물외벽, 그리고 세로로 긴 선을 만들어 내는 창문은 영국인들의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건물을 보면서 런던 시민들은 지난 시절의 추억들과 재회했다. 반면 미술관 내부는 ‘열린 미술관’을 표방한 테이트 모던의 기능에 맞춰 리모델링했다. 화려하거나 위압적인 성전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편하게 즐기고, 참여하고, 삶의 일부로 여길 수 있는 ‘놀이터’의 콘셉트를 구현한 것이다.
이런 테이트 모던의 가치를 구체적으로 보여 주는 곳이 터빈홀이다. 전기 발전기가 있었던 곳으로 테이트 모던의 상징적인 공간이다. 헤어초크와 드 뫼롱은 미술관의 주출입구를 강변과 정면으로 마주한 북쪽이 아니라 건물의 측면에 배치했다. 이는 발전기가 사라진 텅 빈 터빈홀의 서쪽에 입구 로비를 만들어 사람들이 템스 강변의 산책로에서 내부로 입장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새롭게 만든 천창을 통해 햇빛이 자연스럽게 들어와 내부에 있어도 바깥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들게 한다. 입구 로비 쪽 바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사지게 만들어 마치 무대를 내려다보는 구조의 거대한 극장과 같은 효과를 냈다. 7층 높이, 바닥 면적 3400㎡의 터빈홀은 입구 로비의 역할뿐 아니라 현대미술가들의 대형 설치작품을 전시하는 갤러리 기능도 한다. 특히 터빈홀의 장소성을 살려 매년 한 명의 작가를 선정해 작품을 설치하는 ‘유니레버 시리즈’(The Unilever Series)는 테이트 모던의 글로벌 콘텐츠로 자리잡았다. 그동안 루이스 부르주아, 티노 세갈, 아니시 카푸어, 아이웨이웨이, 올라퍼 엘리아슨 등 세계적인 거장들이 다녀갔다. 프랜시스 베이컨, 폴 클레, 앤디 워홀 등 현대미술 소장품을 상설 전시하는 갤러리와 교육 공간은 건물의 측면 3개층에 배치했다.
테이트 모던을 축으로 디자인 미술관, 국립극장 등 템스강 주변의 명소들을 한 시간 도보권으로 묶어 도심에 활력을 불러 넣으려고 했던 테이트재단의 의도는 성공했다. 런던시의 밀레니엄 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민간 예술재단의 기획과 지역사회의 교감으로 폐기된 산업시설을 재생시킨 사례는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았다.
도날드 히스롭 위원장은 “매년 500만 명이 미술관을 방문하면서 주변에 이들을 겨냥한 호텔과 카페, 상점, 레스토랑 등으로 연간 1억 파운드에 이르는 경제효과를 거두고 있다”면서 “불꺼진 화력 발전소였던 테이트 모던은 시민들의 창의적 사고를 길러주고 도시 곳곳에 예술을 전파하는 ‘문화발전소’로 새롭게 태어났다”고 말했다. 미술관 하나가 도시의 이미지를 바꾼 것이다.
/jh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