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금융중심지 ‘시티 오브 런던’(The City of London)에 위치한 바비칸 아트센터는 화려한 랜드마크와는 거리가 멀었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처럼 건물 자체가 예술작품인 소문난 복합문화시설과는 달리 칙칙한 콘크리트 건물이었다. 입구에 바비칸 아트센터라는 간판만 없었다면 문화공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투박하고 밋밋했다. 지난 2008년 미국 CNN방송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흉한 건물 10곳’ 가운데 6위에 이름을 올렸다더니 그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런 성급한 판단은 바비칸 센터에 발을 들여 놓는 순간 보기좋게 깨졌다. ‘보잘것 없는’ 건물 외양과 달리 내부는 아늑한 거실처럼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평일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미술관과 자료실에는 수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시민들의 휴식을 위해 마련한 라운지와 로비에는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정겨운 풍경들이 펼쳐졌다. 자녀들과 함께 온 엄마들은 동화책을 읽어주며 즐거운 오후 시간을 보냈다. 말 그대로 런더너(Londoner)들의 문화사랑방이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바비칸 지역은 전쟁의 상흔이 깊게 패인 버려진 땅이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났다. 1851년만 해도 바비칸과 인근의 크리플게이트(Cripplegate)의 거주인구는 1만 4000 여 명이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1951년에는 불과 48명만이 거주할 만큼 폐허로 전락했다.
런던시의 고민이 깊어지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일각에선 대대적인 개발로 어두운 과거를 말끔히 씻어내자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하지만 망루라는 뜻의 바비칸 지명에서 알 수 있듯 서기 405년 로마군대가 주둔했던 크리플게이트나 엘더스게이트에는 그 시절의 성벽과 망루 잔해가 남아있었다. 런던시는 오랜 토론과 준비 끝에 이 지역을 주거와 문화가 숨쉬는 복합단지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했다.
무엇보다 도심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 상업이나 업무시설 위주의 재개발이 아닌 주거를 위주로 하는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업위주의 재개발로 추진할 경우 낮에는 유동인구가 많지만 밤에는 인근의 베드타운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인해 거대한 도심공동화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시간은 물론 야간에도 바비칸과 크리플게이트에 사람들이 머무는 실질적인 재생을 위해 챔벌린, 파웰, 본 등 3명의 건축가에게 바비칸 일대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겼다.
이들은 기존의 지상 및 지하 철도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대한 공중보행로를 만드는 대담한 계획안을 제안했다. 보행자와 차량을 완전히 분리해 소음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조권이 중요시되는 주거 등의 시설은 포디엄(기둥이나 벽을 지지하는 데 사용하는 주춧대)레벨 위에 배치하고, 주차장 등 일조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설은 포디엄 레벨 아래에 배치하는 등 입체적인 토지이용을 시도했다. 특히 이들은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성벽 잔해 등 역사적 유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에 산책로와 수변공간을 조성해 생활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삭막한 도심생활로 인한 피로감을 씻어주는 도심속의 오아시스를 표방한 것이다.
이같은 ‘바비칸 복합지구(Barbican Complex) 재개발안’(바비칸 지구 프로젝트)은 당시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나 테라스 하우스를 선호하는 영국 사람들에게 고층 콘크리트 건물을 주거공간으로 조성하는 바비칸 지구 프로젝트는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1950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일련의 영국 건축가들은 서구의 미학적인 건축과는 동떨어진 야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을 계획안에 반영했다. 바비칸 지구에 들어선 13개의 건물단지(block)와 42층짜리 고층 건물들이 미학적인 건축양식과 동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59년 3명의 건축가들은 바비칸 주거단지의 규모(4만3000여 평)를 줄이는 수정을 거쳐 재개발 프로젝트를 확정짓고 런던개발공사(City of London Corporation)의 재정지원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크롬웰 타워, 세익스피어 타워, 라우더다일 타워등 42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 3동과 바비칸 아트센터, 런던박물관(Museum of London), 길드홀 음악·연극학교(Guildhall School of Music & Drama), 도서관 등 13개의 건물단지를 5단계로 나눠 바비칸 지구내에 건설했다. 20년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바비칸 센터는 착공 10년 만인 지난 1982년 문을 열었다.
바비칸센터는 바비칸 지구의 꽃이자 세계 도심재생 역사에서 손꼽히는 성공 사례다. 템즈강 남쪽 사우스뱅크 센터와 더불어 런던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기관으로 공연장, 영화관, 자료실, 미술관 등 10여 개의 공간을 거느리고 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BBC 오케스트라의 상주공연장이기도 한 바비칸 센터는 인근의 런던박물관, 길드홀 음악연극학교, 도서관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매년 평균 200여 만 명이 다녀가는 글로벌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한해 평균 570만 명, 트위터 팔로워도 16만 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매년 세계 최고 수준의 전시와 공연 등 2200개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유료관객은 110만 여명.
‘한 지붕 아래서 모든 예술’을 표방한 바비칸 센터가 개관 30년 만에 영국의 문화허브로 뿌리를 내리게 된 데에는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이 있었다. 주거와 문화를 접목시킨 복합단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루이스 제프리스 바비칸 센터 예술감독은 “바비칸 센터는 폐허된 지역을 예술로 되살리기 위해 세워진 거점공간인 만큼 거대한 시설 안에 기초예술 공연장과 교육시설, 화려한 상업시설, 고층아파트 주거시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설계됐다”면서 “문화생산과 소비, 교육과 상업, 주거 등의 이질적인 기능이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괄목할 만한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바비칸 단지내에 거주하는 2113세대 6500명의 주민들은 바비칸 센터의 단골 고객이자 적극적인 후원자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차별화된 예술교육은 바비칸센터의 미래 고객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바비칸 지구는 런던 시민들이 살고 싶어하는 거주지로 떠올랐다. 실제로 다른 구도심과 달리 이 지역은 매년 유입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루이스 제프리스 감독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주거지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건 바비칸 지구만의 특혜이자 매력”이라면서 “바비칸 센터는 복합문화기관이 도시를 어떻게 살려내는 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현장”이라고 덧붙였다.
/jhpark@kwangju.co.kr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하지만 불과 50년 전만 해도 바비칸 지역은 전쟁의 상흔이 깊게 패인 버려진 땅이었다. 1940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공습으로 순식간에 쑥대밭으로 변하면서 사람들이 하나 둘씩 떠났다. 1851년만 해도 바비칸과 인근의 크리플게이트(Cripplegate)의 거주인구는 1만 4000 여 명이었다. 하지만 100년이 지난 1951년에는 불과 48명만이 거주할 만큼 폐허로 전락했다.
무엇보다 도심 인구의 유출을 막기 위해서 상업이나 업무시설 위주의 재개발이 아닌 주거를 위주로 하는 리모델링으로 방향을 잡았다. 상업위주의 재개발로 추진할 경우 낮에는 유동인구가 많지만 밤에는 인근의 베드타운으로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인해 거대한 도심공동화가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낮시간은 물론 야간에도 바비칸과 크리플게이트에 사람들이 머무는 실질적인 재생을 위해 챔벌린, 파웰, 본 등 3명의 건축가에게 바비칸 일대의 재개발 프로젝트를 맡겼다.
이들은 기존의 지상 및 지하 철도선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거대한 공중보행로를 만드는 대담한 계획안을 제안했다. 보행자와 차량을 완전히 분리해 소음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쾌적한 분위기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일조권이 중요시되는 주거 등의 시설은 포디엄(기둥이나 벽을 지지하는 데 사용하는 주춧대)레벨 위에 배치하고, 주차장 등 일조권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시설은 포디엄 레벨 아래에 배치하는 등 입체적인 토지이용을 시도했다. 특히 이들은 로마시대부터 내려오는 성벽 잔해 등 역사적 유물을 그대로 보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주변에 산책로와 수변공간을 조성해 생활속에서 역사의 숨결을 느낄 수 있도록 했다. 삭막한 도심생활로 인한 피로감을 씻어주는 도심속의 오아시스를 표방한 것이다.
이같은 ‘바비칸 복합지구(Barbican Complex) 재개발안’(바비칸 지구 프로젝트)은 당시 거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정원이 딸린 단독주택이나 테라스 하우스를 선호하는 영국 사람들에게 고층 콘크리트 건물을 주거공간으로 조성하는 바비칸 지구 프로젝트는 낯설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것이 1950년대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은 일련의 영국 건축가들은 서구의 미학적인 건축과는 동떨어진 야수적이고 기능주의적인 ‘브루탈리즘(Brutalism)’ 건축을 계획안에 반영했다. 바비칸 지구에 들어선 13개의 건물단지(block)와 42층짜리 고층 건물들이 미학적인 건축양식과 동떨어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1959년 3명의 건축가들은 바비칸 주거단지의 규모(4만3000여 평)를 줄이는 수정을 거쳐 재개발 프로젝트를 확정짓고 런던개발공사(City of London Corporation)의 재정지원으로 공사에 들어갔다. 크롬웰 타워, 세익스피어 타워, 라우더다일 타워등 42층 규모의 초고층 건물 3동과 바비칸 아트센터, 런던박물관(Museum of London), 길드홀 음악·연극학교(Guildhall School of Music & Drama), 도서관 등 13개의 건물단지를 5단계로 나눠 바비칸 지구내에 건설했다. 20년 동안 진행된 이 프로젝트의 마지막 단계인 바비칸 센터는 착공 10년 만인 지난 1982년 문을 열었다.
바비칸센터는 바비칸 지구의 꽃이자 세계 도심재생 역사에서 손꼽히는 성공 사례다. 템즈강 남쪽 사우스뱅크 센터와 더불어 런던의 대표적인 복합문화기관으로 공연장, 영화관, 자료실, 미술관 등 10여 개의 공간을 거느리고 있다. 런던심포니오케스트라(LSO)와 BBC 오케스트라의 상주공연장이기도 한 바비칸 센터는 인근의 런던박물관, 길드홀 음악연극학교, 도서관 등과의 시너지 효과를 통해 매년 평균 200여 만 명이 다녀가는 글로벌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웹사이트 방문자가 한해 평균 570만 명, 트위터 팔로워도 16만 명(2013년 기준)에 달한다. 매년 세계 최고 수준의 전시와 공연 등 2200개의 이벤트가 펼쳐진다. 유료관객은 110만 여명.
‘한 지붕 아래서 모든 예술’을 표방한 바비칸 센터가 개관 30년 만에 영국의 문화허브로 뿌리를 내리게 된 데에는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교육이 있었다. 주거와 문화를 접목시킨 복합단지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주민들의 문화적 자긍심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둔 것이다.
루이스 제프리스 바비칸 센터 예술감독은 “바비칸 센터는 폐허된 지역을 예술로 되살리기 위해 세워진 거점공간인 만큼 거대한 시설 안에 기초예술 공연장과 교육시설, 화려한 상업시설, 고층아파트 주거시설을 유기적으로 결합시켜 설계됐다”면서 “문화생산과 소비, 교육과 상업, 주거 등의 이질적인 기능이 화학적인 결합을 통해 괄목할 만한 시너지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바비칸 단지내에 거주하는 2113세대 6500명의 주민들은 바비칸 센터의 단골 고객이자 적극적인 후원자다. 이들을 타깃으로 한 차별화된 예술교육은 바비칸센터의 미래 고객을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문화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장점이 알려지면서 바비칸 지구는 런던 시민들이 살고 싶어하는 거주지로 떠올랐다. 실제로 다른 구도심과 달리 이 지역은 매년 유입인구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루이스 제프리스 감독은 “자신들이 생활하는 주거지역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문화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건 바비칸 지구만의 특혜이자 매력”이라면서 “바비칸 센터는 복합문화기관이 도시를 어떻게 살려내는 가를 보여주는 귀중한 현장”이라고 덧붙였다.
/jhpark@kwangju.co.kr
* 이 기획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