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광주대교구 김희중(67) 히지노 대주교는 최근 방한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과 대부분 일정을 함께했다.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광주 방문 때 의전과 통역담당으로 함께했던 김 대주교에게는 이번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이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요한 바오로 2세가 정부의 만류에도 광주와 소록도를 방문했던 모습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세월호 유가족 등을 배려하는 모습이 오버랩되기도 했다. 두 교황을 곁에서 지켜본 김 대주교는 “논리적인 설득이 아닌 낮은 곳에서, 현장에서 소외된 분들과 함께하는 삶의 중요성을 새삼 재확인했다”고 말했다.

21일 오전 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김 대주교를 만나 교황 방한의 의미와 한국 사회에 남긴 것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의 일정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무엇인가요.

▲첫날 한국주교단과의 만남에서 교황님은 우리 주교들을 격려하시며 “주교님들이 사제들과 소통하며 사제들을 돕자”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사제들을 얼마나 소중하게 여기시는지 느낄 수 있었죠. 주교들과의 대화를 마치고 방문하신 기념으로 서명을 부탁드렸는데 큰 종이에 100원 동전만큼 작은 글씨로 ‘Francisco’라는 이름만 한쪽 귀퉁이에 적으셨어요. 주교님들 모두가 웃었지만 이내 교황님의 뜻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즉, 자신은 내세울 것이 없는 아주 작은 존재라는 뜻이 아니었겠는가 생각합니다. 또 꽃동네에서 장애아들의 율동을 보고 단상에서 내려가 함께하는 모습과 19일 떠나시는 아침 7시에 행사를 도왔던 교통경찰을 머무셨던 대사관에 초청해 한분 한분 손을 잡아주시며 감사를 전하는 모습도 사랑의 배려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치약과 칫솔, 책이 든 가방을 직접 들고다니시는 모습도 인상깊었어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나흘 동안 만나시는 등 파격적인 행보가 많았습니다.

▲교황님은 격식의 프레임을 뛰어 넘으셨습니다. 격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그 격식의 정신과 의미를 최대한으로 살리면서 사람을 우선적으로 중요시하시는 참된 자유인이시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렇다고 그 격식을 무시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격식은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의식으로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만나시는 사람에게 온전히 투신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세월호 유족들을 마주했을 때 중립을 지킬 수 없었다”고 하셨는데요.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 앞에서 ‘정치적’ 해석을 한다는 자체가 무의미한 일입니다. 공자님은 ‘인(仁)은 동정이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곧 어짐과 사랑이 같은 정으로 함께하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겠습니까. 성경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기뻐하는 사람과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사람과 함께 슬퍼’하는 것을 사랑이라고 했어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분들을 기억하며 함께하고자 하는 표시를 가슴에 달고 계셨던 교황님은 세월호 유족들이 가지고 있는 참담한 슬픔을 함께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이 겪고 있는 절박한 ‘고통’ 앞에서는 정치적인 계산이나 좌우를 따질 것이 아니라 먼저 함께하는 것이라는 가르침을 주신 것이라고 생각해요.

-교황이 한국 사회에 남긴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산적해 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내놓으신 것은 아닙니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데 있어서 중요한 방향을 제시하신 것이죠. 교황님은 ‘사랑’, ‘마음’, ‘사람’이라는 단어를 많이 쓰셨어요.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도 사랑이 빠지면 안 되고, 인간의 마음이 담겨져 있지 않은 문제 접근법은 사무적이고 도식적인 것으로 끝나버릴 것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곧 정성입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 정성을 중시하는 것만큼 모든 문제에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고, 사람을 대상화하거나 도구화한다면 우리 사회는 적자생존을 추구하는 정글의 법칙으로 삭막해질 것입니다. 어떤 문제든 사람이 빠지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세월호 참사도 사람이 빠진 경제 논리 추구에서 비롯된 일 아닌가요.

-교황의 말씀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시다면.

▲아시아청년대회 폐막 미사에서 연대성을 많이 강조하셨습니다. 가난한 자 등 사회적 소외계층이 지속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사회 현상에 대해 방관하지 말도록 당부하신 것이죠. 아시아 청년들에게 ‘Wake up, Asian Youth, 아시아의 젊은이들이여 깨어나라’고 말씀하신 것도 사회의 불의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잠들지 말고 깨어 있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깨어있는 청년들이 연대할 때 그 힘은 배가 됩니다. 특출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혼자 100보를 앞서 질주하는 것보다 100사람이 10보 함께 연대해 나가는 사회를 위해 함께하자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싶어요. 종교 지도자들에게도 ‘우리 인생은 길이다. 길은 혼자 걸으면 따분하다’고 하시기도 했어요. 우리는 ‘다름’이 ‘틀림’이라고 생각하는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너의 의견이 다르고, 그들의 색이 다릅니다. 그렇다고 틀린 것이 아니죠. 여러 색깔을 지닌 꽃들이 어우러질 때 더욱 아름다운 정원이 되는 것처럼 인류 사회도 종교, 신앙, 양심의 자유를 존중해줘야 합니다.

-한국 교회가 배워야 할 점은 무엇인가요.

▲더욱 낮은 곳으로 내려오시고자 하는 교황님의 무언의 가르침에 따라 백성들을 위한 봉사자로 나선 우리 주교들과 성직자들도 보다 낮은 자세로, 더욱 겸손한 자세로 섬기는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해요. 교세의 확장이 아니라 모든 종교의 벽을 뛰어넘어 인간이 겪고 있는 모든 고통에 과감히 투신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라틴어 속담에 ‘진보하지 않는 것은 퇴보한다’라는 말이 있어요. 교회도 초심으로 돌아가 쇄신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천주교 광주대교구를 책임지는 있는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제가 교구를 이끌어간다는 발상 자체가 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과분한 소임이에요. 교구를 이끌어가는 기술이 아니라 저 자신이 그렇게 사는 삶 자체가 ‘복음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황이 환호를 받으시는 것은 그분이 영웅이어서가 아니라 항상 꾸밈없이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죠. 우리가 아시시(이탈리아)에 가서 그분의 옷가지 등을 보고 감동하는 이유도 그런 것들에 삶이 스며 있어서죠.

-현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초심을 잃지 않고, 후보 시절 약속들을 지켜 나가셨으면 합니다. 당선 직후 제가 ‘51%의 지지를 받았고, 49%의 지지를 받지 못했지만 49%를 끌어안고, 100%의 대통령이 되시길 부탁드린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49%가 왜 반대했는 지를 생각해보고, 살피고 챙기셨으면 합니다.

/김경인기자kki@kwangju.co.kr

/사진=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 김희중 히지노 대주교는

▲1975년 7월 사제 수품 ▲1983년 2월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 ▲2003년 6월 광주대교구 보좌주교 ▲2003년 8월 주교 수품

▲2009년 9월 광주대교구 부교구장 대주교 취임 ▲2010년 4월 제9대 광주대교구 교구장 착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