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지면 만질수록 커지는 게 두 가지가 있다. 그 중에 한 가지가 지역감정이다. 해결책은 간단하다. 탕평인사나 적절한 예산 분배 등이면 족할 뿐. 소리 내어 떠들기만 해서는 일이 더 커진다는 얘기다.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게 세 가지가 있다. 바둑알과 더불어 지역감정도 그 중 한 가지다. 누가 지역감정을 살려내는가. 정치인들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악용하고 부풀리면서 더욱 골이 깊어졌다. 대표적인 인물로 두 사람이 떠오른다. 이효상과 김기춘이다.
이효상(1906∼1989)은 지역감정 악용의 비조(鼻祖)다. 박정희 대통령과 김대중 후보가 맞붙은 1971년 7대 대선 당시. 공화당의 이효상 국회의장은 노골적으로 지역감정을 부추겼다. “경상도 대통령을 뽑지 않으면 우리 영남인은 개밥에 도토리 신세가 된다.”
이효상이 지역감정 조장의 효시(嚆矢)라면 김기춘(75·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종결자(終結者)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맞붙은 1992년 14대 대선 당시. 부산의 한 음식점(초원 복집)에서 비밀회동이 열린다. 김기춘을 비롯한 부산의 각 기관장들이 다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다. 경남 출신과 경북 출신 가리지 말고 뭉치자는 거였다.
‘우리가 남이가?’는 원래 경상도에서 널리 쓰이는 겸양의 표현이다. 무언가 도움을 받은 친구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무뚝뚝하게 던지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상대의 심적 부담이 줄어들기 마련일 터.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배려의 말인 셈이다. 이렇게 좋은 말을 그들은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통탄할 노릇이다.
지역구도가 깨지고 있다
어찌 됐든 이런저런 이유로 선거판의 지역구도는 견고해졌다. 그러나 그 오랜 지역구도가 이제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만 봐도 그렇다. 대구의 김부겸이 야당 간판을 걸고도 40% 이상 지지율로 돌풍을 일으켰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다. 광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그곳 대구에서 새정치연합 소속 기초의원이 9명이나 탄생한 것이다.
대구의 돌풍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광주에서도 작은 바람이 불었다. 광산구 기초의원에 출마한 박삼용 후보가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승리한 것이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광주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소속 후보들이 6·4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것도 표심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선만 되면 지역 주민을 외면하고 오직 공천에만 신경 쓰는 야권의 일당 독식 구도에 넌더리가 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즘 순천·곡성이 들썩이고 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새누리당 후보로 7·30 보궐선거에 나오기 때문이다. 출마의 변은 당연히 ‘지역구도 타파’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누군가 이 지역구도라는 엄청난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1m 구멍을 뚫고, 다른 사람이 또 1m를 뚫고, 그 다음 사람이 또 1m를 뚫다 보면 지역구도 장벽이 무너질 것이다.”
벌써 한 달쯤 됐나. 그의 고향 출마를 권유하는 칼럼(본보 6월13일자 2면)을 쓴 적이 있다. ‘대구의 김부겸 광주의 이정현’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나간 직후 그는 주소지를 고향인 곡성으로 옮겼다. 이어 출마 선언을 했다. 지난번 광주에서 40%가량 득표해 가능성을 보인 그는 이번엔 “출마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선을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과연 그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변수가 많겠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당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론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려를 하는 측은 유권자 수를 비교하기도 한다. 몰표가 예상되는 그의 고향인 곡성은 2만6872명. 이에 비해 순천은 21만4889명이다. 하지만 그가 순천 주암중 출신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승리를 확신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그의 상대로 ‘친노’(친 노무현) 계열의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가 확정됐다는 점이다. 서 후보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1년 초 의원직을 잃은 전력이 있다. 상대가 어찌 됐든 흠결이 있다는 점은 이정현에게는 고무적이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는 ‘친노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아직 여전한 것도 그에게는 유리한 점이다.
이번엔 진짜 해 볼 만해
예상되는 ‘야권의 분열’도 이정현의 선전 가능성을 점치는 요인이다. 순천·곡성은 국회 최루탄 투척 혐의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의 지역구. 이를 되찾겠다며 같은 당 이성수 전 전남지사 후보가 가세했다.
여기에 구희승 변호사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새정치연합·통합진보당·무소속이 총출동한 것이다. 이 같은 다자(多者)구도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표의 분산’은 이정현의 입장에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일 것이다.
선거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가 이겨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이다.(물론 이는 이정현이 야당 텃밭의 여당 후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지 지지율의 높고 낮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정현은 “호남 최초로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변혁이 순천·곡성에서 시작돼 호남 발전과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연 순천·곡성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야를 떠나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쓸 만한 인물’을 키우는 정치적 변화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관성대로 2번을 찍을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민심은 풀잎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기에. 다만 지금 ‘호남 지역에 여당 의원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죽었다가도 살아나는 게 세 가지가 있다. 바둑알과 더불어 지역감정도 그 중 한 가지다. 누가 지역감정을 살려내는가. 정치인들이다. 지역감정은 정치인들이 악용하고 부풀리면서 더욱 골이 깊어졌다. 대표적인 인물로 두 사람이 떠오른다. 이효상과 김기춘이다.
이효상이 지역감정 조장의 효시(嚆矢)라면 김기춘(75·현 대통령 비서실장)은 그 종결자(終結者)다. 김대중과 김영삼이 맞붙은 1992년 14대 대선 당시. 부산의 한 음식점(초원 복집)에서 비밀회동이 열린다. 김기춘을 비롯한 부산의 각 기관장들이 다 모였다. 이 자리에서 나온 말이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다. 경남 출신과 경북 출신 가리지 말고 뭉치자는 거였다.
‘우리가 남이가?’는 원래 경상도에서 널리 쓰이는 겸양의 표현이다. 무언가 도움을 받은 친구가 고마워서 어쩔 줄 몰라 할 때, 마치 당연한 일을 했다는 듯이 무뚝뚝하게 던지는 말인 것이다. 그러면 상대의 심적 부담이 줄어들기 마련일 터. 결국 다른 사람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배려의 말인 셈이다. 이렇게 좋은 말을 그들은 정치적으로 악용했다. 통탄할 노릇이다.
어찌 됐든 이런저런 이유로 선거판의 지역구도는 견고해졌다. 그러나 그 오랜 지역구도가 이제 균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지난 6·4 지방선거만 봐도 그렇다. 대구의 김부겸이 야당 간판을 걸고도 40% 이상 지지율로 돌풍을 일으켰지 않은가. 그 뿐만이 아니다. 광주 사람들이 잘 모르는 놀라운 사실이 또 하나 있으니. 그곳 대구에서 새정치연합 소속 기초의원이 9명이나 탄생한 것이다.
대구의 돌풍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광주에서도 작은 바람이 불었다. 광산구 기초의원에 출마한 박삼용 후보가 새누리당 간판을 달고 승리한 것이다. 지방선거가 실시된 이후 광주에서 여당 후보가 당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무소속 후보들이 6·4지방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것도 표심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당선만 되면 지역 주민을 외면하고 오직 공천에만 신경 쓰는 야권의 일당 독식 구도에 넌더리가 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요즘 순천·곡성이 들썩이고 있다.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새누리당 후보로 7·30 보궐선거에 나오기 때문이다. 출마의 변은 당연히 ‘지역구도 타파’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나는 누군가 이 지역구도라는 엄청난 장벽에 조그만 구멍을 뚫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1m 구멍을 뚫고, 다른 사람이 또 1m를 뚫고, 그 다음 사람이 또 1m를 뚫다 보면 지역구도 장벽이 무너질 것이다.”
벌써 한 달쯤 됐나. 그의 고향 출마를 권유하는 칼럼(본보 6월13일자 2면)을 쓴 적이 있다. ‘대구의 김부겸 광주의 이정현’이라는 제목으로. 칼럼이 나간 직후 그는 주소지를 고향인 곡성으로 옮겼다. 이어 출마 선언을 했다. 지난번 광주에서 40%가량 득표해 가능성을 보인 그는 이번엔 “출마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당선을 확신한다”고 자신했다.
과연 그는 꿈을 이룰 수 있을까. 변수가 많겠지만 지금까지 상황만 보면 당선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여론을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대 반 우려 반’이다. 우려를 하는 측은 유권자 수를 비교하기도 한다. 몰표가 예상되는 그의 고향인 곡성은 2만6872명. 이에 비해 순천은 21만4889명이다. 하지만 그가 순천 주암중 출신이라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가 승리를 확신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그의 상대로 ‘친노’(친 노무현) 계열의 새정치연합 서갑원 후보가 확정됐다는 점이다. 서 후보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2011년 초 의원직을 잃은 전력이 있다. 상대가 어찌 됐든 흠결이 있다는 점은 이정현에게는 고무적이다. 여기에 대통령까지 만들어 주었는데 해 준 게 뭐가 있느냐는 ‘친노에 대한 호남의 반감’이 아직 여전한 것도 그에게는 유리한 점이다.
이번엔 진짜 해 볼 만해
예상되는 ‘야권의 분열’도 이정현의 선전 가능성을 점치는 요인이다. 순천·곡성은 국회 최루탄 투척 혐의 등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통합진보당 김선동 전 의원의 지역구. 이를 되찾겠다며 같은 당 이성수 전 전남지사 후보가 가세했다.
여기에 구희승 변호사도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새누리당·새정치연합·통합진보당·무소속이 총출동한 것이다. 이 같은 다자(多者)구도에서 당연히 나타나는 ‘표의 분산’은 이정현의 입장에선 불감청고소원(不敢請固所願)일 것이다.
선거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더도그 효과’(underdog effect)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개싸움에서 밑에 깔린 개가 이겨 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뒤지는 사람에게 동정표가 몰리는 현상이다.(물론 이는 이정현이 야당 텃밭의 여당 후보라는 점을 말하는 것이지 지지율의 높고 낮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이정현은 “호남 최초로 지역구도를 타파하는 변혁이 순천·곡성에서 시작돼 호남 발전과 대한민국 정치 발전의 기폭제가 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과연 순천·곡성 주민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여·야를 떠나 지역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쓸 만한 인물’을 키우는 정치적 변화를 택할 것인가. 아니면 관성대로 2번을 찍을 것인가. 아직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민심은 풀잎처럼 바람보다 먼저 눕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서기에. 다만 지금 ‘호남 지역에 여당 의원 하나 있어도 좋겠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