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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이야기' 무방비로 허허 거리다 뒤통수를 된통 맞았다
연극 ‘푸르른 날에’ 서울 공연 리뷰
배우들 열연·음악 조화 감동 여전
김남주 시 ‘학살 2’ 낭송 땐 전율이
내달 13일∼22일 광주 팬 만난다
2014년 05월 29일(목) 00:00
2012년 서울에서 연극 ‘푸르른 날에’를 처음 접했을 때가 기억난다. ‘5·18’을 소재로 한 작품이고, 2011년 초연 당시 대한민국 연극대상 작품상을 수상하며 평단과 관객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는 것 이외에 별다른 정보는 없었다.

극 초반에는 좌불안석이었다. 기존 접했던 5월 관련 작품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5월을 이렇게 가볍게 다뤄도 되는 걸까. 이렇게 계속 웃고 있어도 되는 걸까. 무방비 상태로 허허거리다 ‘오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뒤통수를 된통 맞았다. 초반 웃음이 끊이지 않았던 객석 역시 한숨과 탄식이 나오고, 눈물을 쏟는 이들이 많았다.

2년만에 다시 연극 ‘푸르른 날에’를 만났다. 지난 24일 찾은 서울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서 열린 연극 ‘푸르른 날에’의 감동은 여전했다. 여전히 웃겼고, 아팠고, 슬펐다.

‘푸르른 날에’는 5·18 당시 전남도청에서 붙잡힌 야학 교사 오민호와 그의 연인 윤정혜의 사랑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날의 광주와 그 이후 30년의 이야기를 다룬다. 살기 위해 비겁자가 된 오민호는 고문 후유증과 죄책감으로 삶을 포기할 지경이 되고 결국 불가에 귀의한다. 보성 차밭이 보이는 암자에서 수행중이던 그는 조카이자 ‘딸’인 운화의 결혼 소식을 듣게되고 그의 기억은 1980년 광주로 옮겨간다.

작품이 시작되기 전, 공연장에 들어선 관객들은 불상을 향해 절을 올리는 무대 위 한 스님의 모습을 목도하며 작품속으로 들어간다. 시작은 유쾌하고 발랄하다. 시종일관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는 대사와 신파극에서나 볼 듯한 과장된 몸짓과 연기가 긴장감을 풀어준다. 초반의 이런 장치들은 스펀지에 물이 스미듯 5월 광주를,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관객을 긴장하게 만드는 건, 1980년 오월 도청 장면부터다. ‘오월 어느 날이었다, 1980년 오월 어느 날이었다 광주 1980년 오월 어느 날 밤이었다.’ 김남주의 시 ‘학살 2’를 배우들이 발을 구르며 낭송할 때 전율이 인다. 그 어떤 극적 장치보다도 그날의 긴박함과 오월 현장의 생생함을 단박에 보여주는 신이다.

작품 곳곳에 흐르는 음악은 감정선을 최대한 끌어올린다. 도청 안에 있는 이들이 마지막 죽음을 맞을 때 흐르는 ‘오월의 노래’의 원작 프랑스 샹송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 ‘봄볕 내리는 날, 뜨거운 바람 부는 날’로 시작되는 ‘오월의 노래 2’, 시민군이 부르는 폴 앵카의 ‘다이아나’와 핑크 플로이드의 ‘Another brick in the wall’ 그리고 송창식의 ‘푸르른 날에’까지.

배우들은 이 연극의 가장 강력한 힘 중 하나다. 관객들을 아득하게 만드는 생생한 물고문 연기에, 개처럼 바닥을 기며 나락으로 떨어져 김남주의 ‘진혼가’를 읊조리는 민호 역의 이명행의 연기는 압권이다.

매해 공연마다 삭발을 하고 완벽하게 여산 스님으로 분하는 김학선의 연기도 감동적이다. 잊을 수 없는 건, 여산 스님의 마지막 표정이다.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그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 2011년 초연 때부터 출연했던 이들이 그대로 뭉친 앙상블 역시 강한 인상을 준다.

‘푸르른 날에’는 ‘5월 연극’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또 인생의 ‘푸르른 날’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과거의 자신과 화해하고 성찰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날 인터뷰에서 고선웅 연출자와 출연 배우들은 광주 공연에 대해 감사함과 동시에 부담도 느낀다고 했다. ‘푸르른 날에’는 다소 낯선 공연이다. 특히 오월 그날을 직접 겪었던 광주 관객들은 일정 부분 불편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광주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지 궁금하다.

광주 공연은 오는 6월13일부터 22일까지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열린다. 티켓 가격 4만5000원∼2만5000원. 문의 062-220-0525.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