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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희망’이 되었다
놓치면 아까운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
2014년 04월 08일(화) 00:00
‘마라의 죽음’을 패러디한 ‘티앙’은 빅 무니즈와 ‘카타도르’들이 재활용 쓰레기로 작업했다.
1793년 7월 13일 프랑스 ‘인민의 벗’이었던 혁명가 장 폴 마라가 욕조에서 살해당한다. 혁명 동지 다비드는 이 모습을 그림으로 옮겼다. 서양미술사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히는 다비드의 ‘마라의 죽음’이다.

2014년 4월 5일 광주극장 스크린에서 또 다른 ‘마라의 죽음’을 만났다. 작품의 주인공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재활용 쓰레기를 줍는 티앙. 작품의 재료는 그와 2500명 조합원들이 주운 온갖 쓰레기다.

다큐멘터리 ‘웨이스트 랜드’(Waste land)는 쓰레기 더미에서 핀 예술품, 쓰레기로 만든 희망을 목도하는 자리다. 그리고 예술이 삶에 미치는 힘이 얼마나 강하고 아름다운지 보여주는 영화이기도 하다.

다큐 감독 루시 워커의 카메라는 브라질 빈민가 출신으로 뉴욕에서 활동중인 세계적인 사진작가 빅 무니즈의 작업을 따라간다. 그가 찾은 곳은 세계 최대 규모 쓰레기 매립지 자르딤 그라마초.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이라는 팻말이 붙은 이곳에 버려지는 쓰레기는 하루 7천t에 이른다. 이 거대한 쓰레기 더미를 매일 헤집고 다니는 이들은 재활용 쓰레기를 주워 생계를 유지하는 ‘카타도르’다.

화면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되는 거대한 쓰레기 더미에서 그들은 정직한 노동으로 살아간다는 자부심과 언젠가는 이 곳을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꿈을 함께 꾸며 삶을 이어간다.

‘예술이 사람을 바꾸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던’ 빅 무니즈는 2년간 머물며 재활용 쓰레기를 재료로 삼아 ‘카타도르의 초상’이 담긴 ‘쓰레기로 만든 작품’(Picture of Garbage)’을 완성한다. 이 작품들은 런던 경매장에서 판매되는 등 세계적인 성공을 거둔다.

영화의 전반부에서는 모델이 되는 각 인물의 스토리를 들려준다. 카타도르의 정신적 지주이자 시인으로 마지막 순간까지 노동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보여준 발테르, 쓰레기 속에서 재료를 모아 요리를 만드는 모든 이들의 어머니 이르마, 10대 싱글맘으로 성매매와 마약을 하지 않는 자신에게 당당한 두 아이의 엄마 수엘렝, 쓰레기에서 모은 책으로 도서관을 만들 꿈을 꾸는 줌비, 그리고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젊은 지도자 티앙까지.

쓰레기가 예술이 된다는 것에, 자신들이 작품의 주인공이 된다는 것에 의아심을 갖던 그들은 작품을 제작해가면서 쓰레기 더미 속에서 묻어두었던 꿈과 희망을 찾는다.

누군가 버리고 간 인형, 낡은 릴 테이프, 페트병, 병뚜껑 등 온갖 재활용 쓰레기들이 그들을 찍은 사진과 어우러져 ‘작품’으로 거듭나는 모습은 경이롭다. 그 변화의 과정을 지켜보는 내내 가슴이 울컥해지고,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많다.

영화에는 유머와 낙천주의가 흐른다. 현대 미술이 뭐라고 생각했느냐는 빅 무니지의 말에 “쓰레기”라고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답하는 티앙의 모습은 움찔하면서도 유쾌하다. “현대미술은 이해도 안 가고 의미도 없다. 예술엔 소통이 필요하다”는 말에는 일정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누군가를 돕는다는 교만이 없는 점도 이 영화의 인상적인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예술가들이 겪는 고민은 ‘현장’으로 들어간 우리 예술가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되는 문제다. 작가와 제작자는 불만 지르고 떠나는 것, 단발 작업이 그들의 인생을 바꾸어주는 게 아니라는 것, 작품 후 그들의 상실감 등에 대해 격론을 벌인다.

그러면서 다른 현실을 봐야 생각의 발상도 바뀐다. 변화하려는 의지를 갖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는 힘이 된다는 이야기를 나눈다. 결국 선택은 그들의 몫이었고, 프로젝트가 끝난 후 쓰레기장으로 돌아간 이도, 쓰레기장에 다시 돌아가지 않은 이도 있다.

“가끔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만 세상은 우리를 아름답다고 하죠.” “무언가를 간절히 원해야만 삶에 의미가 생겨요. 가치도 있고요.” “꿈이 있는 삶이 모든 것을 가진 삶보다 아름답다” 등 영화 속에는 명대사가 가득하다. 특히 낡은 양말을 꺼내 신고, 머리에 두건을 쓰고 다시 쓰레기장으로 향하는 노인 발테르가 전하는 ‘99와 100의 차이’는 두고 두고 가슴에 남는다.

자르딤 그라마초는 2012년에 폐쇄됐다. 영화는 2010년 제작됐다. 늦게 온 감이 있지만 그들의 ‘현재’를 알 수 있어 궁금증이 풀린다. 마지막 자막이 올라가며 흐르는 모비의 음악 ‘Beautiful’까지 듣고 나오길. 우리 시대 예술가들, 그리고 우리 모두 꼭 봤으면 하는 영화다. 강추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