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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식민지
신 경 구
광주국제교류센터 소장·전남대 명예교수
2014년 02월 25일(화) 00:00
4년 전쯤 서울 소재 대학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는 교수를 만났을 때, 내가 광주국제교류센터 일을 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그는 즉시 “내가 유니버시아드대회 자문을 하고 있어서 자주 광주에 간다. 부탁할 일이 있으면 얘기해라”고 해서 매우 놀란 일이 있다. 그 뒤로 이 교수에게 아무런 부탁도 하지 않았고 도움도 받지는 않았지만, 광주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게 되는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나는 당시에 전남대학교의 국제협력본부장을 맡고 있었고, 또 광주국제교류센터의 소장을 1999년부터 맡고 있어서 외국인, 특히 외국 대학과의 인맥이 적지 않았지만 유니버시아드대회 운영 과정에서 외국대학 연결을 위한 자문을 요청받은 일이 없었다. 어떤 직책이었는지는 모르나 그 대학 교수는 여비까지 받아 가면서 광주에 와서 자문을 해 줬고,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얘기해서 나를 매우 초라하게 만들었다. 그때부터 광주의 여러 가지 중요한 직책을 서울 사람들이 맡고 있거나 주도한다는 사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예민한 문제여서 실제 사례를 들기는 어렵지만, 학력위조로 광주비엔날레의 위상을 실추시킨 ‘신정아 사건’은 그 대표적인 예다. 그런 뒤에도 지금까지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큼직큼직한 지역 행사의 핵심 역할을 서울 사람들이 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세계한상대회를 비롯해서 많은 중요 행사가 광주에서 열렸지만, 서울 대행사가 이를 담당했다. 광주에서 중요한 일을 하는 많은 사람의 출신 지역은 광주지만, 서울에 활동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런 현상이 계속 된다. 대표적인 예가 ‘노벨상 수상자 대회’다. 수십억을 들여 행사를 했지만, 그 뒤로 다시 방문한 노벨상 수상자도 없고, 네트워크의 중심이 광주가 된 것도 아니다. 행사 자체를 서울 대행사가 진행했기 때문이다. 광주시가 돈을 대고 광주에서 행사를 했다는 것을 빼고 나면 서울 행사와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광주출신이지만,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오래 하던 이들은 “광주에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예 무시하지 않는다면 다행일 것이다. 이들의 활동 무대가 서울이었기 때문에 서울 인맥밖에 없는 것도 이유로 꼽힌다. 광주에서 맡은 직책을 끝내면 다시 서울로 가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광주에서 일하는 동안 서울 인맥을 활용하는 것이 편리하고, 또 서울로 복귀하면 그 인맥은 자신의 (서울지역) 활동기반이 된다.

비단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만 이런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어느 대학의 소식지는 서울 업체가 편집과 출판을 담당한다. 그래서 소식지에 쓸 인물 사진조차 업체 사람들이 내려와서 찍는다. 비용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러한 현상은 전국의 모든 지방에 공통된 현상으로, 부산시청이 발행하는 ‘Dynamic Busan’이라는 영어잡지는 편집·인쇄·영문기사 작성 등의 일을 모두 서울 업체가 담당하고 있다. 내가 전남대학교의 국제협력 일을 맡았을 때에도 홍보실에서 영어 홍보 동영상을 서울 업체에 맡겨서 최종 대본을 내게 읽어보라고 줬었다. 도무지 말이 안 되기에 하루 품을 내서 고쳐 주면서 서울에 맡기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서울 업체에 맡겨야 결과물의 수준이 떨어져도 윗사람들이 나무라지 않는다”면서 서울에 맡길 것을 고집했다.

우리나라가 경제발전을 하는 과정에서 국산품을 보호했듯, 광주나 다른 지방들은 지방의 인재를 키우고 업체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물론 보호주의에는 부작용이 따르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의 모든 지방은 정치·경제·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서울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