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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동물원
숨진 기린가족의 뱃 속 보니
노끈·면장갑·과자봉지 가득
2013년 03월 13일(수) 00:00
남편과 새끼를 잃은 암컷 기린 ‘아린’이 12일 광주 우치동물원 우리에 애처롭게 홀로 남아 있다. 아린의 남편인 밀레린과 새끼 기린은 2011년 6월과 12월 잇따라 죽었다. 오른쪽은 밀레닌이 지난 2010년 3월 태어난 새끼를 핥아주며 지극정성으로 돌보는 모습. /김진수기자 jeans@
‘동물이 배탈납니다. 물·과자·음료수 등의 먹이를 주지 마세요.’

광주우치동물원이 봄 나들이 인파가 많아지는 시기에 맞춰 기린 사육장 앞에 ‘의미심장’한 팻말을 설치했다. 사육장 둘레로 2m 거리를 두고 안전펜스도 쳐 관람객들의 접근을 아예 차단했다. 동물원을 찾는 즐거움 중 하나인 먹이주기를 금지한 것인데 사연이 남다르다.

3년 전인 지난 2010년 3월 29일 수컷 밀레린(당시 11세)과 암컷 아린(〃 8세) 사이에서 몸무게 45kg·키 1.5m의 암컷 새끼가 태어난 뒤 3마리의 기린 가족은 여태껏 우치동물원을 찾는 관람객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는 귀한 존재였다.

1994년 6월 용인 에버랜드에서 기린을 들여온 이래 처음인데다, 1971년 사직동물원부터 시작해 광주 동물원 개장 이래 40년 만의 출생이어서 안팎의 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키 7m·몸무게 900㎏의 수컷이 지난 2011년 12월 2일 갑자기 죽었다. 앞서 같은 해 6월 초엔 2시간40분간의 진통 끝에 세상에 나온 새끼 기린도 쓰러졌다. 행복하게 보이던 기린 가족에게 무슨 일이 생긴걸까. 동물원측은 명확한 사인을 가리기 위해 부검을 실시했다.

부검에 나선 시 보건환경연구원과 전남대 수의과대학과 의료진들은 깜짝 놀랐다. 메스를 들이대고 보니 기린의 위 속이 엉망이었다고 한다. 수컷 밀레닌의 위 속에선 노끈·비닐·과자봉지·면장갑 등이 가득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물질들이 뒤엉켜 돌멩이처럼 딱딱하게 굳은 덩어리(가로 10㎝·세로 5㎝·두께 2㎝ 크기)가 3개나 나왔다. 사인은 증식성 사구체 신염. 위 속에 이물질이 많아 소화를 어렵게 했고 이는 먹는 것도 힘들게 해 신장 등에 염증성 질환이 생겼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한다”며 너나 할 것 없이 해온 관람객들의 잘못된 먹이주기 관행이 기린 가족의 이별을 만들어낸 셈이다. 동물원은 관람객이 늘어나는 시기라는 점을 감안, 향후 관리·감독도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우치동물원 윤병철 사육담당은 “사육사들이 매일 동물 건강상태 등을 확인한 뒤 이에 맞는 식단을 짜서 먹이를 주고 있다”며 “일부 관람객들이 동물들에게 먹이주기 하는 모습을 자주 보는데, 오히려 동물의 건강을 해칠 수 있는 만큼 자제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한편, 우치동물원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74마리가 질병·부상 등으로 폐사했다.

/이종행기자 golee@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