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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막 5년 … 소와 함께 부른 행복한 귀농歌
고흥 정착 차성준·안숙희 부부의 설맞이
2013년 02월 08일(금) 00:00
민족 대명절인 설을 앞두고 8일부터 본격적인 귀성전쟁이 시작됐다. 폭설과 한파로 어느 때 보다 고향가는 길이 힘들 것으로 보이지만, 귀성객들의 마음은 설레기만 하다. 설을 사흘 앞둔 7일 광주 북구 중흥어린이집 아이들이 한복을 예쁘게 차려입고 새해 큰 절을 올리고 있다. /나명주기자 mjna@kwangju.co.kr
서울에서 아무 연고도 없는 고흥군에 내려와 소 100마리를 키우며 5번째 설을 맞는 차성준(67)·안숙희(57) 부부를 찾은 것은 설을 일주일 앞둔 지난 3일 오후. 파릇파릇 싹이 난 마늘밭 사이로 승용차 1대가 간신히 다닐 수 있는 구불구불한 시멘트 길이 이어졌다. 한참을 들어가니 큼지막한 축사 옆 신식 주택이 나타났다. 고흥군 점암면 천학리 122-1번지. 집 안으로 들어서자 차씨 부부 외에 16명의 ‘시숙님’과 ‘형님’들이 취재진을 반겼다. 안씨는 거리낌 없이 나이 많은 동네 아낙은 형님, 남자는 시숙님이라고 불렀다.

“저를 낮추고 이웃들에게 다가서는 것이 아무 연고도 없이 들어온 이곳에 정착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어요. 사업 망하고 타지에 숨어들었다는 등 갖가지 소문도 시간이 좀 지나니 사라지더라고요.”

‘사모님’이었던 안씨는 주민들을 알아가기 위해 마을 식당에서 허드렛일도 했다. 반말을 했던 마을 청년들이 이제는 형수님이라고 깍듯이 대접해주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다고 미소지었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던 차씨는 갑자기 망막 이상이 와 실명 위기를 겪고 심장 박동 이상으로 3차례나 수술대에 올랐다. 은퇴할 나이도 됐고, 노후를 보내고 싶은 곳을 찾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녔다.

“강원도며, 경기도를 돌다가 친척 권유로 이곳을 찾았죠. 그냥 보고 상경하는데, 갑자기 조그만 축사가 매물로 나왔다는 전화를 받았어요. 내려가서 바로 계약해버렸습니다.”

차씨는 150평 부지의 축사를 산 뒤 당분간 서울에서 지냈다. 하지만 계속 축사가 머릿속을 맴돌았고, 결국 도시에서의 ‘첫 번째 삶’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축사 옆에 조그만 공간을 만들고, 그곳에서 부부가 5년을 살았습니다.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축산업을 하려면 몸으로 부딪치는 것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더라고요.”

지금은 500평으로 늘어난 축사에서 5년 동안 태어난 송아지는 모두 60마리. 단 1마리의 폐사도 없이 모두 건강하게 받아 길러냈다.

“사료 값만 매달 1000만원씩 들어갑니다. 수지타산을 도저히 맞출 수 없어 제가 최근 요양보호사 자격을 취득해 돈을 법니다. 시골에 내려와 유유자적할 줄 알았는데, 더 힘들어요. 서울 사는 아들(31)이 가끔 오는데 혀를 내두릅니다.” 안씨의 말이다.

하지만 이곳에 내려와 놀랍게도 남편은 건강을 되찾았고, 언제든 부부를 붙잡아줄 정겨운 이웃들을 만났으며, 부부가 꼭 있어야 할 이유가 되는 소 100마리도 생겼다.

김치범(70) 이장은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마을로 들어올 때 걱정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들 부부의 삶을 지켜보며, 모두 감동했다”고 말했다. 서경자(여·69)씨는 거의 죽어가는 송아지 2마리를 살려준 차씨에게, 17년 전 남편과 함께 귀농한 이미애(여·44)씨는 삶의 조언자가 돼 준 안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했다.

이 마을에서는 독거 노인도 많고, 도시로 간 자녀가 안 오는 경우도 있어 설과 추석을 마을회관에서 함께 치르고 있다. 차씨 부부는 시숙님, 형님들과 설을 어떻게 준비할 지 도란도란 이야기하며 어릴 적 그때처럼 들뜬 마음으로 설을 기다리고 있다.

/고흥=윤현석기자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