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제4회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는 이색 작품이 출품됐었다. 보스턴 출신 미국의 동물학자 템플 그랜딘이 설계한 도살장 도면이었다. 자폐증을 이겨낸 감동 실화로 영화화되기도 했던 템플 그랜딘의 작품은 동물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줬다. 템플 그랜딘이 고안한 도살장은 철저히 동물의 입장에서 시작됐다. 소의 움직임과 행동을 유심히 관찰한 뒤 죽음을 앞둔 소가 불안함을 느끼지 않고 도살장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앞이 보이지 않는 좁은 통로를 만드는 등 인간이 베풀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자는 게 이 작품의 핵심이다.

미국의 환경운동가 니콜렛 한 니먼의 ‘돼지가 사는 공장’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책이다. 저자는 미국에서 공장식 돼지 사육 반대 캠페인 이끌었던 변호사이기도 하다.

지난해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로 닭과 오리 650만 마리, 돼지 340만 마리, 소 15만 마리 등 1000여만 마리가 넘는 가축이 땅에 묻혔다. 이들 동물은 약물이 부족하고, 전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죽음을 강요당했다.

저자는 이들 동물의 죽음은 산업화와 자동화의 물결을 타고 시작된 공장식 축산업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가축을 공장에서 물건처럼 길러내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공장식 축산업은 환기도 잘 되지 않는 공간에 빈틈이 없을 만큼 가축을 몰아 넣고 사육하는 탓에 바이러스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또 기본적으로 생명체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로 손 꼽힌다.

이 때문에 최근 돼지를 학대하며 기르는 축산 업체의 모습이나 돼지에게 고통을 주며 도축하는 영상 등이 공개되면서 공장식 축산 방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패스트푸드 업체는 좁은 축사에 가둬 키운 돼지고기를 구매하지 않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미국인이 소비하는 고기 중 공장식 축산업으로 얻어낸 것이 99%에 달한다고 한다.

책에는 저자가 직접 방문한 공장식 축산업 현장을 고스란히 소개하고 있다. 콘크리트 바닥 위에서 사료와 약품을 먹고 비정상적으로 몸만 불린 돼지들은 태어난 지 약 5개월이면 생을 마감한다고 한다. 이들 돼지들은 바깥 공기는 맡아 보지도 못하고, 흙도 한 번 밟아 보지 못한 채 좁은 공간에서 ‘인간의 식품’이 되기 위해 기형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

닭도 마찬가지다. 좁은 철창에 갇혀서 햇빛도 보지 못하고 어미 닭 대신 인공 부화기가 달걀을 품는다. 또 수평아리들은 태어나자마자 산 채로 분쇄기에 넣어져 ‘산업 폐기물’ 신세가 되기도 한다.

이 밖에 생선도 양식장에 갇혀 육상 동물의 배설물로 만든 사료를 먹으면서 질병과 기생충에 시달리고 있고, 젖소가 낳은 수송아지의 경우 절반 정도는 태어나자마자 도축 돼 송아지 고기로 팔려나간다.

〈수이북스·1만5000원〉

/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