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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운디 … 사진은 봐 줄 만 허요”
■ 잠월미술관 ‘Hello, 산내리 할매’ 전 가보니
2010년 08월 16일(월) 00:00
산내리의 사진작가 김현순·윤영숙 할머니
“아, 아, 이장인디요. 광주에서 온 손님들 거시기(맞아야) 해야쓴께 논이나 밭에서 일하고 있는 ‘작가 할매들’은 싸게 미술관으로 오시요잉.”

14일 오후 5시 함평군 해보면 산내리, 18가구 20여 명의 주민이 모여 사는 한적한 산골에 마을 방송이 울려퍼졌다. 이곳에 둥지를 튼 잠월미술관(관장 김광옥)에서 열리는 ‘Hello, 산내리 할매’(14일∼9월10일)전의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었다.

이번 전시에는 박현구, 장복님, 정앵순, 정기님, 윤영숙, 김현순, 심효덕씨 등 60∼70대 산내리 할머니들이 참여해 디지털 카메라로 마을의 정겨운 풍경을 담은 이색 작품을 선보인다.

이날 오전부터 광주에서는 반가운 손님들이 마을을 찾았다. 이광연(51) 이장이 가장 젊은 사람 축에 낄 정도로 마을에는 노인들만 살고 있다. 하지만 이날 만큼은 엄마 손을 잡고 마을을 찾은 아이들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미술관 앞마당에서는 주민들이 직접 재배한 양파, 고추, 부추를 푸짐하게 넣고, 고소한 부침개를 부쳐 50여 명의 외지 관람객들을 대접했다.

평생 처음 전시회를 여는 할머니들이 미술관에 도착하자 관람객들의 박수 갈채가 터져나왔다.

“부끄러운디….” 수줍은 새색시 마냥 작품 앞에 선 할머니들. “요것은 30년 넘은 우리집 벼람박(바람벽) 사진인디, 볼 것은 없지라우?” “누가 물 한 번 안 줘도 이라고(이렇게) 꽃은 잘 자라요. 그래도 꽃 사진은 봐 줄만 허요.”

할머니들은 지난 6월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 주관한 ‘디카, 제대로 활용하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카메라 작동법을 배웠다. 센터 강사들에게 사진을 배워 마을의 다양한 풍경을 프레임에 담았다.

정앵순(74) 할머니는 “자식들하고 놀러가믄 맨날 찍혀만 봤재 한 번도 찍어보지를 못했어. 내가 이렇게 사진을 찍게 될 줄 누가 알았것능가”라며 즐거워했다.

이번 전시에서 할머니들은 사진만 찍은 게 아니다. 도시 사람들의 고민을 풀어주는 든든한 해결사 역할도 맡았다. 함께 열린 프로젝트 그룹 ‘간이스튜디오 K’가 주관한 ‘아 하면 어 하는 산내리 서랍전’에도 할머니들의 숨결이 묻어있다.

이 전시는 도시민들이 고민을 적은 엽서를 보내면, 할머니들이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답변을 담아 함께 공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밤에 잠이 안 온다”는 서울 노총각의 하소연에는 “장가 가라, 밤이 짧은 것이여”라는 명쾌한 답변을 남겼고,“건망증이 심하다”는 한 아주머니의 고민에는 “곧 잊어버리고 그러는 사람 있어, 자꾸 대화를 혀봐야제∼”라며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도시에서 찾아온 사람들도 할머니들에게 잊지 못할 선물을 남겼다. 퓨전국악그룹 ‘아이리아’는 전자바이올린 연주, 국악공연을 펼쳤고, 비보이 팀은 할머니들과 흥겨운 어깨춤을 췄다.

김광옥 관장은 “할머니들이 산골 마을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모습 자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이다”며 “도시와 농촌이 서로 ‘소통’하고, 도시 사람과 농촌 사람이 ‘관계’를 맺는 소중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의 070-8872-6718.

/오광록기자 kroh@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