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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량 키우고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아라
⑩ 뉴욕 미술시장에서 살아남기
2010년 05월 27일(목) 00:00
광주출신으로 현재 뉴욕에서 작가로 활동하고 있는 강태웅씨가 브루클린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뉴욕이라는 거대 도시를 무대로 살아가는 한국인의 삶은 맨하탄, 브루클린, 퀸즈, 롱 아일랜드, 그리고 허드슨 강 건너의 뉴저지 인근까지 펼쳐져 있다. 브로드웨이 32가 주변 코리아타운에는 음식점, 서점, 슈퍼, 노래방, 제과점 같은 한국적인 취향의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것은 물론이고 한국 유학생들이 많이 모여 있는 파슨스 디자인 스쿨(Parson’s Design School) 같은 학교 주변 델리 가게에서는 오뎅, 떡볶이가 있을 정도로 뉴욕이라는 도시에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면 뉴욕 주변에 2000 명이 넘게 살고 있는 한국 작가들은 어떻게 작가로서의 입지를 만들어 가고 있는가?

경력을 업그레이드 시켜 사회적으로 주목되는 전시를 하고 작품을 판매하는 작가적인 입지를 갖기란 세계 어디에서나 쉽지 않다. 지금은 90세를 넘기고 뉴욕 한인 1세대 작가로서 맨하탄 중심가에 부인 실비라 월드의 미술관을 가지고 있는 재미화가 김보현의 경우를 보더라도 그의 족적은 뉴욕 아트월드에서 한인 작가의 산 증인이 되고 있다.

초기 그는 대학 교수의 신분에서 유학생, 넥타이 공장의 아르바이트 등을 거치면서도 작품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추상표현주의 화풍 속에서 자신의 독특한 세계를 만들었다. 또한 동아 미술대전 1회 대상의 수상자였던 변종곤이 치안이 험악했던 할렘가에서 목숨을 걸면서 살아온 이야기는 한국 작가의 뉴욕 삶을 대변해주는 예가 된다. 그는 작업 외에는 절대 아무 것도 하지 않겠다는 결심으로 살았지만 결국 생선 가게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한다.

거짓으로 경험이 있다고 취직을 했지만 그 어설픔이 말이 아니어서 파직의 위기를 당하던 어느 날, 그 가게에 온 신사가 한쪽에 걸린 변종곤의 작품을 발견하였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자신이 작가임을 잊지 않기 위해 그는 작은 소품하나를 생선가게에 걸러두었던 것이다. 그 신사는 독일계 딜러였고 그는 그길로 다시는 생선가게에 가지 않아도 되었고 작업실과 전시의 기회를 마련해서 작가로 성장한 그의 실화는 가슴을 찡하게 만든다. 지금은 시대도 삶의 방식이 달라져서 넉넉한 부모의 배경으로 어렵지 않게 작업하는 작가들도 있다. 하지만 한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경제적 여건이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집념으로 작업하는 후배들은 여전히 있다.

광주 지역 작가로서 그러한 뉴욕의 삶에 뿌리내린 두 작가를 소개하자면 강태웅과 마종일을 들 수 있다. 마종일의 경우 졸업 후 사회생활을 하다가 늦게 다시 유학을 온 케이스. 그는 스쿨 오브 비쥬얼 아트(School of Visual Art)에서 공부를 했고 이후 스탄 형제(Doug & Mike Starn)의 작업장에서 프레임 제작의 실무자로서 8년 가까이 일했다.

그는 이미 국내에도 광주 중흥프로젝트, 담양 프로젝트, 2009년 인천 여성미술제에 참여하는 등 대나무나 나무를 이용한 설치 작가로서 입지를 넓혀오고 있다. 미국에서도 꾸준히 전시를 해 와서 작년에는 랩(Lab)갤러리 개인전, 소크라테스 공원에서 한 거대 설치 작품으로 주목을 받았다.

그는 졸업 후 미국 작가의 작업장에서 생계를 위해 일했지만 작가로서 자존심으로 작업에 매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그에게 최근 뉴욕에서 화제가 되는 사건이 있었다. 자신의 고용주였던 스탄 형제가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옥상에서 펼친 야외 조각전에 마종일의 작품과 거의 비슷한 대나무 설치 작품을 ‘빅 뱀부(Big Bambu)’라는 제목으로 발표하였다. 이 작품은 뉴욕 타임즈를 통해 소개되었고 그를 아는 일부 한인들은 그 작품 사진 이미지를 보고 드디어 마종일의 메트로폴리탄에 입성했다고 환호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종일은 스턴의 형제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이용했다고 주장했다. 당사자들은 이를 강력히 부정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히 개연성이 있다.

물론 이것을 법적 공방으로 해결한다고 해도 마종일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미국의 파워와 한 한인 작가의 주장 사이에서 고용주가 마종일의 작품에서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는 심리적 판단이 들더라도 법적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종일이 이것을 문제화한 것은 작가로서 목소리를 가지고 싶은 것이었고 이에 한인 사회도 마종일을 후원하는 서명을 보냈다. 그는 현재 플러싱에 있는 예감 갤러리에서 주장의 정당성을 보여주는 ‘마종일의 10년의 긴 이미지’라는 전시회를 진행하고 있다.

광주출신 강태웅은 대학원 졸업 후 시간강사로서 생활을 하다 1998년 작가로서 경력을 넓혀가는 시기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는 처음 펜실바니아에서 어학을 공부하였고 그곳에서 미술대학까지 졸업하고 최근 뉴욕에 왔다. 그도 펜실바니아에 있을 때 이미 학교 갤러리에서 전시하는 등 학교로부터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아직 뉴욕의 아트월드는 그에게 넘어야 할 벽이다.

하지만 그는 성실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고 있고 작가로서 진지성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직접 제작한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신문지를 붙여 제작한 자신만의 독특한 캔버스에 자연의 형상을 닮은 도자기를 부착하는 작업세계를 추구한다. 브루클린에 있는 NARS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소속된 작가이면서 관리자로 활동하고 있다.

뉴욕에 있는 대표적인 한국 갤러리는 첼시 25가 포진되어있는 아라리오갤러리, 가나갤러리, 두산 갤러리는 주로 국내의 유명작가들의 전시에 치중되어 있어 현지 작가들에게는 오히려 미국 갤러리와 관계를 만들고자 하고 있다. 최근 작가들의 동향을 살펴보면 국내와 국외의 경계가 사라져 가고 있다.

국내 작가들은 뉴욕처럼 세계문화의 중심들에 와서 자신의 작품을 전시하고 작품을 평가받고 싶어 하고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들은 국내 미술시장의 활성화에 따라 자신의 영역을 국내에 넓혀가길 원한다. 이제 작가는 국내 갤러리, 국제무대의 경계를 넘어 자신의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 현재 아트마켓의 분위기에서 창작의 열정과 작품 판매라는 양손의 떡을 이루어가야 하는 작가들에게 뉴욕은 결코 쉬운 곳은 아니지만 도전장을 던지고 역량을 겨루어볼 만한 매력적인 곳이기도 하다.

뉴욕에 있으면 간혹 왜 뉴욕이 좋은가를 묻는 경우가 있다. 이곳에는 다양함과 자유가 있다. 그래서 힘들지만 이곳에서 어떠한 가능성들을 찾게 된다. 공원에 누어있는 사람들, 다람쥐, 홈리스의 삶까지 작가이기 때문에 눈과 마음이 열려서 그것들을 보고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 나가고자 한다. 〈끝〉

〈뉴욕거주 독립큐레이터·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