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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 42억 대박 터뜨린 ‘영원한 기아맨’ 장 성 호
2005년 11월 25일(금) 00:00
1995년 11월 까까머리의 ‘서울 촌놈’이 광주구장에 나타났다. 충암고 3학년이던 장성호(28·기아)였다. 그 해 장성호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1순위로 지명돼 해태 유니폼을 입었다. 왼손타자가 절실하다는 팀 사정을 잘 알고 있었던 김경훈(48) 스카우트부장의 눈에 띄어 광주로 오게 된 것이다.
10년이 지난 2005년 11월 7일, ‘서울 촌놈’은 로또복권 안 부러운 대박을 터뜨렸다. 올 시즌을 끝으로 프리에이전트(FA)가 된 장성호는 지난 7일 기아 구단과 최소 34억 원에서 최대 42억 원에 4년간 계약을 맺었다. 역대 FA 가운데 심정수(30·삼성)에 이어 두 번째 거액이다.
◇해태는 나의 힘=“만일 해태가 아닌 다른 팀에 갔더라면 진작 야구 그만뒀을 지도 모릅니다.” 장성호는 충암중·고등학교 시절 ‘범생이’와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품행제로’에 가까웠다. 야구가 하기 싫다고 숙소 문을 박차고 나가기 일쑤였다.
‘게으른 천재’였던 장성호지만 군기 세기로 소문난 해태에 온 뒤로 180도 바뀌었다. 선배들이 무서워서라도 야구를 안 할 수가 없었다. “그래, 한 번 해보자.” 홈경기 때 단체훈련 시간은 오후 3시부터 시작되지만 장성호는 한 시간 전인 2시에 운동장에 나가 개인훈련을 했다. 더 이상 ‘게으른 천재’는 없었다.
◇내 인생의 반려자=“아내는 친구이자 든든한 후원자죠.” 장성호는 해태 입단 2년차였던 97년 우연히 3대 3 미팅을 나간 자리에서 동갑내기 아내 진선미 씨를 만났다. 지금처럼 대스타도 아닌 시절이었다. ‘서울 촌놈’ 장성호의 끈질긴 구애와 5년의 열애 끝에 2001년 결혼에 골인했다.
‘42억 원의 사나이’의 지갑에는 돈이 얼마나 들어있을까. 백만 원짜리 수표가 두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공처가’ 장성호는 아내에게 용돈을 타서 쓴다. 그것도 ‘월급’이 아니라 필요할 때마다 받는다. 고액 연봉자의 아내답지 않게 진선미 씨는 돈 관리가 철저하다. 언론사 선정 각종 시상금까지도 꼬박꼬박 챙길 정도다.
◇광주가 고향이죠=4년간 최대 42억 원에 계약한 장성호는 2006년과 2007년 연봉이 각각 4억5천만 원, 2008년과 2009년 연봉이 각 5억5천만 원이다. 지난해 박진만(28)은 장성호와 똑같이 4년 계약을 했다. 그런데 마지막 해 연봉을 4억 원으로 낮춰 놓았다. 젊은 나이를 감안해 4년 뒤 보상금을 낮춰 한 번 더 FA 대박을 터뜨리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장성호는 반대로 연봉을 올렸다. 3·4년차 연봉이 1·2년차 연봉보다 1억 원이나 많은 것이다. 분명히 다음 FA 협상 때 불리한 조건이다. “4년 뒤에는 아예 FA신청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이번 협상을 통해 기아가 저를 얼마나 원하고 있는 지 알았습니다. 영원히 기아맨, 광주 사나이로 남을 겁니다. 저를 사랑하는 이 곳, 광주를 떠날 수 없습니다.”
/최재호기자 lion@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