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사랑한 명사들과 나의 꿈- 문길섭 시암송국민운동본부 대표
2025년 11월 11일(화) 00:20
최근에 알게 된, 시에 특별한 애정한 가졌던 두 분의 명사를 소개하고 싶다. 대학 총장을 지낸 고(故) 김호길 박사와 프랑스 전 대통령 퐁피두다.

먼저 김호길 박사. 김 박사는 과학자 중에선 가장 많은 시를 외운 분이다 (박이문 교수의 증언). 포항공대(POSTECH) 초대 총장을 지낸 김호길 박사(1935~2006)는 시 암송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김호길 박사는 과학자이자 교육자였지만 동시에 시와 문학을 깊이 사랑했다.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과학도라 하더라도 시를 읽고 암송할 줄 알아야 교양인이 된다”는 걸 강조했다.

그는 강연이나 축사에서 직접 시를 암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단순히 자신의 언어로 말하는 것보다 시인의 언어를 빌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훨씬 울림이 크다고 보았던 거다. 그는 윤동주, 김소월, 한용운 같은 한국 시뿐 아니라 영시(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 롱펠로의 ‘인생찬가’ 등)를 즐겨 외웠다.

그는 “포스텍이 세계적인 대학이 되려면 기술 이전에 사람의 품격을 길러야 한다”고 말하며 그 품격의 근간으로 시와 문학을 통한 정신 수양을 꼽았다. 그래서 학생들과의 자리에서 “좋은 시 몇 편쯤은 늘 암송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김 박사는 직접 시를 쓰기도 했다. 그의 수필집과 강연집에도 자주 암송한 시와 구절이 인용되어 있어 ‘시 암송하는 총장’으로 기억된다.

김호길 박사는 과학자이면서 시를 삶의 정신적 양식으로 삼았고 총장 시절 학생들에게 시 암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직접 본을 보인 교육자였다. 그래서 “포스텍의 정신적 토대에는 김호길 박사의 시 사랑이 깔려 있다”는 평가도 있다.

두 번째로 소개하고 싶은 분은 ‘프랑스의 문화대통령’(프랑스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나라다)이라 불리운 조르주 퐁피두다. 조르주 퐁피두(1911~1974) 대통령은 원래 문학에 굉장히 조예가 깊은 인물이었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면서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고 젊은 시절에는 교편을 잡기도 했다. 특히 프랑스 시인들의 작품을 거의 통째로 암송할 정도로 기억력이 뛰어났고 실제로 만 줄 가까운 시를 외웠다는 일화가 널리 알려져 있다(한 편의 시가 열 줄을 담고 있다면 약 천 편의 시가 되리라).

그가 가장 사랑한 시인 중에는 폴 발레리, 폴 클로델, 그리고 보들레르 등이 있었고 대통령이 된 뒤에도 공식 석상에 시를 인용하거나 암송하는 모습을 보이곤 했다.

내게는 이따금 멋진 글씨를 써서 보내 주는 고향 선배 한 분이 있다. 대학에서 예술경영 강의를 하고 서예에도 조예가 깊은 분이다. 추석을 앞두고 보내 준 여러 글씨 속에 서예가 김병기 교수의 신문 스크랩도 있었다. 글 제목은 ‘不學詩無以言(불학시무이언)’.

인류의 대스승인 공자의 ‘시에 대한 생각’이 아들과의 대화에 담겨 있어 흥미로웠다. “시를 공부했느냐”라고 묻자, “아직요... ”라고 대답하는 아들 백어(伯魚)에게 공자는 “시를 공부하지 않으면 말을 할 게(수) 없다”라고 했고 이후 백어는 시 공부를 시작했다고 한다. 김 교수는 “머리로 계산한 전략적인 말이 아니라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심의 말이 시이며, 진심이 담긴 말이라야 설득력이 있고 감화력이 있는 ‘진짜 말’이다”라고 하였다.

오래 전 광주를 찾은 ‘25시’ 작가 게오르규가 광주공원 강연 중에 ‘광주는 시의 도시’라고 말했다고 한다. 내겐 작지만 간절한 꿈이 하나 있다. 남녀노소 구분 없이 빛고을 시민이라면 좋아하는 시 열 편쯤은 가슴에 품고 살기를. 전국에 노벨문학상의 빛고을 시민들은 시를 사랑한다는 소문이 나기를.

시암송국민운동본부에서는 이러한 꿈에 공감하는 분에게 암송하기 좋은 시 50편이 수록되어 있는 작은 시집을 선물로 보내드리고 있다. (joywriting@hanmail. net)

올해 노벨화학상은 일본 과학자가 받았다. “도전은 최고의 즐거움”이라는 그분의 고백이 가슴에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시 암송도 의미 있는 도전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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