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살아낸 작가들의 ‘편지’로 본 한국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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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를 살아낸 작가들의 ‘편지’로 본 한국문학
그간 격조했습니다-이동순 지음
2025년 11월 13일(목) 18:40
1986년 7월 5일 김지하 시인이 이동순 시인에게 보낸 육필편지. <창비 제공>
“내가 만약 밖에 있다면 ‘김지하 장례식’부터 치르고 싶다.(중략) 나뭇가지를 물어다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누워 저 자신을 불지르고 잿더미 속에서 부활하는 사막의 불사조가 되려는 것인가? 모든 것 다 버리고 무간지옥에 이를 때까지 울며 떠돌 것이다. 삶의 뜻을 물으며.(중략) 다시 말한다. ‘김지하’는 죽었다. 나를 ‘김영일’이라 불러다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장례식은 청주에서 하자. 조사(弔辭)는 네가 써다오.”

1986년 어느 여름날, 시인 이동순은 강원도 원주의 정신병동에 입원한 시인 김지하가 보낸 일곱장 분량의 편지를 받는다. 오래된 편지를 다시 떠올린 건 2022년 5월 8일. 김지하의 고향인 목포 유달산 자락 숙소에 머물던 그는 시인의 별세 소식을 듣고 그날 새벽 ‘곡절 많은 삶을 살다 간 영일 형님’에게 작별의 글을 쓴다.

신동엽문학상 등을 수상한 시인이자 문학·인물사·대중가요사 연구자 이동순의 신작 ‘그간 격조했습니다’는 시대를 살아낸 작가들의 ‘편지’에서 발견한 한국 문학의 ‘또 다른’ 모습을 담고 있다. ‘시와 혁명의 서곡’, ‘유폐된 언어의 저항’, ‘일상의 서정’, ‘기억, 헌사, 응답’ 4부로 나눠 시인, 작가, 평론가 등 38인의 편지 64점을 담은 책은 부제처럼, ‘편지로 읽는 한국문학의 발자취’다.

더불어 편지를 쓴 작가와의 인연, 작품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어 흥미롭다.

저자는 편지란 “단순한 종잇조각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마음을 조심스레 담아내는 통로”이고 “인간을 여유와 성찰, 이성의 자리로 이끄는 삶의 철학이자 마음의 풍경”이라고 말한다. 옛 편지를 다시 꺼내 읽는 이유는 “그 안에 잊히지 않은 감정과 말 들이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고 “사랑과 눈물, 그리움과 설레임이 가득한 그 시절의 편지는 여전히 우리를 위로하고 다독이기”도 해서다.

‘백석 시선집’을 발간한 저자에게 어느날 한 여성으로부터 전화가 걸려 온다. 시인 백석의 여인 김자야 여사였다. 함흥 영생고보 영어 교사였던 백석은 기생 진향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그녀에게 자야라는 이름을 지어준다. 3년 간 함께 산 후 분단으로 백석과 영원히 이별한 자야는 가슴에 온통 백석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저자의 제안으로 자야 여사는 백석의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마다 저자에게 편지를 써보냈다. “‘당신이 살아서는 이별이 없는 나의 마누라’라고 하시던 그 중천금(重千金)의 말씀을 어느 세상에 몇번 다시 태어난들 잊고 아니 찾아뵈오리까”(1988년 4월 14일 자야) 등 30여통에 달한 편지는 저자의 손을 거쳐 ‘내 사랑 백석’(김자야지음·문학동네 펴냄)으로 묶여 나왔다.

책에 등장하는 편지는 유신정권과 군부독재정권의 치하에서 문인들이 어떻게 버텨왔는지도 알 수 있다. 정부에 의해 폐간된 ‘창비’의 복간 즈음에 백낙청 평론가가 보낸 편지에는 “잡지 없어진 동안에 태어나고 자라난 많은 유능한 신진들을 규합”하려는 발행인의 마음이 엿보이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공주교도소에 수감중인 황석영이 보낸 짧은 편지도 애틋하다.

제자를 대하는 스승의 마음은 “먼눈 팔지말고 꼭 하고 싶은 일에 성(誠)을 다하도록 바랄 따름이네. 엄벙덤벙하다가 모든 걸 놓치는 수가 있다”고 조언하는 김춘수 시인의 편지에서 느낄 수 있고, 20대 시절의 발랄한 이경자 소설가의 모습은 “여름의 모든 걸 참 좋아한다”고 쓴 편지에서 만날 수 있다.

책에는 그밖에 김광균·김규동·염무웅·송기원·최원식·정채봉·정호승·안도현 등의 편지와 그에 얽힌 이야기가 실려 있다. <창비·1만7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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