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현필 역사 바로잡기 연구소장 “임진왜란 때 호남인들 활약에 주목해야”
[광주일보 13기 리더스아카데미]
500년 조선 역사 속 중심은 호남
왜군과 맞서 싸운 용맹한 그들
이순신 장군도 존경하고 의지
조명되지 않는 현실 안타까워
500년 조선 역사 속 중심은 호남
왜군과 맞서 싸운 용맹한 그들
이순신 장군도 존경하고 의지
조명되지 않는 현실 안타까워
![]() 황현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이 제13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강연에서 ‘전라도의 역사’를 주제고 강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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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기 광주일보 리더스 아카데미 강의가 지난 11일 라마다플라자 광주 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강사로 나선 황현필<사진> 역사바로잡기연구소장은 ‘전라도의 역사’를 주제로 강의했다.
황 소장은 이날 강의에서 조선 선조 시기 발생한 임진왜란(1592년~1598년)을 배경으로 ‘호남의 알려지지 않은 의병’에 대해 이야기 했다.
호남은 500년 조선 역사 속 언제나 중심에 있었다. 이순신이 존경한 유일한 인물인 전라좌수사 정걸(고흥), 이순신과 함께 거북선을 건조한 나대용(나주),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의 유언을 받든 송희립(고흥), 이순신이 난중일기에서 언급할만큼 아꼈던 정운(영암) 모두 전라도 출신의 장군이다.
황 소장은 ‘이순신의 사람’ 중 대표적인 예로 남원 출신 ‘황진’ 장군을 언급했다. 전라도는 호남평야 최대 곡창지대이자 이순신 장군의 근거지이며 해로(海路)로, 필수로 지켜내야 하는 요지였다. 일본군은 전라도를 뚫기 위해 고바야카와 다카카게를 앞세워 웅치(진안)와 이치(금산)로 향했다. 황진 장군은 정담 장군과 조선군 1000여명의 병력으로 웅치에서 일본군과 맞섰고 다음날 이치 전투에서도 황진 장군과 조선군은 맹렬하게 저항해 결국 왜군을 후퇴시켰다. 황진 장군은 무너져가는 진주성전투에 투입해 6000명의 군사들과 10만명의 일본군에 맞섰다. 진주성은 8일간 버텼고 3만명의 일본군 사상자를 냈다. 황진은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의 총탄에 맞아 전사했다.
“7년간의 임진왜란 속 초반부터 영웅적으로 왜군과 맞서 싸워 숨진 이들은 잊혀지고 전쟁 중 백성을 버리고 도망가거나 끝까지 살아남은 자들의 이야기만 전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광주 고경명, 나주 김천일, 화순 최경회, 담양 김덕령 등 우리가 기억해야 할 호남의 의병장들이 많지만, 여전히 잘 알려지지 않고 있죠.”
황 소장은 “교과서에서 다뤄지지 않고, 드라마나 영화 속에서 조명되지 않는 인물이라 할 지라도 호남인들만큼은 그들의 용맹함을, 그들의 이야기를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제13기 리더스 아카데미 다음 일정은 오는 18일 라마다플라자 광주호텔에서 김상욱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의 강연으로 이어진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