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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전남 통합 논의를 지켜보며

2020년 10월 14일(수) 00:00
많은 이야기가 오가는 명절 밥상머리를 흔히들 ‘민심의 용광로’라고 한다. 연휴 기간 서로 다른 지역과 환경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여론이 뒤섞이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 추석에는 10개월째 이어지는 코로나19 사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비롯한 대선 주자들의 경쟁 구도 등이 이야깃거리가 됐다.

여기에 더해 광주·전남 지역에서는 ‘시도 통합’이 화두로 떠오르기도 했다. 논의에 불을 지핀 건 이용섭 광주시장이다. 그는 추석 직전인 지난달 10일 ‘공공기관 2차 이전 토론회’ 축사에서 ‘광주·전남의 행정 통합을 적극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시도 통합을 전격 제안했다. ‘따로 가면 완결성도, 경쟁력도 확보하기 어렵고, 지금처럼 사안마다 각자도생하면서 치열하게 경쟁하면 공멸할 뿐’이라는 게 그 취지였다.

사실 광역 행정구역 통합을 제안하고 나선 건 이 시장이 처음은 아니다. 생활권이 비슷한 지자체들끼리 합쳐 지방 정부와 도시의 ‘광역화’를 추진하는 것은 하나의 큰 흐름을 이루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돈과 사람과 일자리를 온통 빨아들이는 ‘수도권 블랙홀’로 인한 지방의 위기의식이 자리하고 있다. 수도권 비대화가 가속화되면서 지방은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소멸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그러한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생존을 위한 대안으로 광역자치단체 간 통합 움직임이 일고 있는 것이다. 몸집을 키워 ‘규모의 경제’가 가능해지면 지역 경쟁력이 높아지고 공동 번영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다.

대구와 경북이 그 대열의 맨 앞에 있는데, 권영진 시장과 이철우 지사는 2022년까지 인구 510만 명의 ‘대구·경북 특별자치도’를 출범시키기로 하고 공론화 및 특별법 제정에 힘을 쏟고 있다. 허태정 대전시장도 지난 7월 세종시와의 통합 논의를 제안했다. 그런가 하면 김경수 경남지사는 인구 800만 명의 부산·울산·경남을 한데 묶은 ‘동남권 메가시티’를 제2의 수도권으로 육성하자고 주장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광주·전남 역시 미래 경쟁력을 높이려면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게 시도 통합 제안의 가장 큰 명분이다. 교통·관광·문화 등 각 분야에서 중복 투자나 과도한 경쟁을 피함으로써 행정 비용을 절감하고, 역할 분담을 통해 균형 발전을 꾀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게다가 인구 330만 명의 광역 경제권을 구성하면 지방교부세 등 정부 지원은 물론 지역 내 총생산(GRDP)을 늘릴 수 있게 된다.



명분이야 나무랄 데 없지만



통합 제안의 폭발력은 컸다. 전남도는 ‘의견 수렴 선행’이라는 전제를 달긴 했지만 즉각 “통합에 공감하고 찬성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지역 국회의원들이나 기초자치단체장들도 통합 자체에는 원론적으로 찬성하는 입장을 보였다. 아마도 광주와 전남이 천년 이상 역사와 문화를 함께해 온 공동 운명체이자 한 뿌리라는 의식이 지역민 다수에게 내재돼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장의 제안은 이 같은 지역 공동체의 동질성을 자극함으로써 다중의 관심을 끌어모으는 데는 일단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명분이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왜 지금인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기류가 강하다. 해법을 논의할 ‘광주·전남 상생발전위원회’가 있긴 하지만 1년 가까이 회의 한 번 열지 못한 가운데, 광주 민간·군 공항 및 공공기관 2차 이전, 혁신도시 문제 등을 둘러싸고 전남도와 갈등을 빚고 있는 상황에서 이 시장의 제안이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광주 지역 사회 내부의 공감대 형성도 없이, 통합 상대방인 전남과 사전 교감은 물론 상호 신뢰도 쌓지 못한 채 ‘설익은’ 제안이 나와 진정성을 의심받고 있는 것이다. 광주시가 내부 현안인 자치구 간 경계 조정도 수년째 풀지 못하고 있고, 확산하는 코로나19 대응에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시기라는 점도 ‘뜬금없다’는 반응이 나오는 데 한몫 한 듯하다.

그럼에도 이 시장은 ‘광주·전남 통합은 평소 소신’이라며 뜻을 굽히지 않는다. “즉흥적인 것도 아니고 어떤 정치적 계산도 없이 상생과 동반 성장을 위해서는 더 늦기 전에 시작돼야 한다.” 이 시장의 이러한 해명에도 불구하고 지역 사회에서는 시기의 적절성과 미래 비전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 되기에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광주형일자리 노사상생 합의와 ‘2045 탄소 중립 에너지 자립도시’ 선언으로 경제·환경 분야의 전국적 이슈 선점을 꾀해 온 이 시장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또 다른 ‘큰 그림’ 아닌가 하는 의심의 시선도 있다. 김영록 전남 지사도 “통합에 앞서 연방제 수준의 지방 분권이 이뤄져야 한다”는 거대 담론으로 이슈 경쟁에 나서는 모양새다.

문제는 당위성만 앞세우거나 ‘남들이 하니까’ 하는 수준으로는 통합의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이다. 광주와 전남은 1986년 11월 광주시가 전남도에서 분리된 이후 두 차례나 통합을 시도했지만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하향식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끝내 무산된 경험을 갖고 있다. 이들 전례를 보거나 통합에 반대하는 시도민이 3분의 1 이상이라는 최근 일부 여론조사 결과를 감안하면, 섣부른 통합 시도는 되레 또 다른 갈등과 혼란만 야기할 수도 있다.



상생 노력과 공감 형성 먼저



통합이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장점만 부각시켜서도 안 된다. 광역 행정 중심의 통합이 이뤄지면 기초 지자체의 자치권이 위협받고, 이들 지역 주민들의 행정 서비스 만족도가 떨어질 수도 있다. 특히 지역민들 사이에 하나라는 연대 의식이 없으면 작은 갈등이 분열로 비화하는 불씨가 될 개연성이 높다. 실제로 마산·창원·진해 3개 시가 창원시로 통합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인구 등에서 불균형이 오히려 심화됐다는 진단이 나오면서 일부에선 ‘재분리’까지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국 최대 자치단체인 경기도의 경우 경기북부 분도(分道) 추진과 대도시들의 특례시 지정 등 독자 생존 움직임 등으로 불협화음이 일고 있다.

이런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할 때 진정으로 광주·전남 통합을 ‘시대적 과제’라고 생각한다면, 구체적 비전과 장단점 및 추진 전략을 먼저 제시하고 지역민의 공감을 얻어 내는 게 올바른 순서일 것이다. 여기에 광주 공항 및 공공기관 이전 과정에서 양 시도가 상생의 노력을 기울임으로써 끈끈한 신뢰를 구축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이후 전개될 통합 논의의 과정은 광주·전남의 공생과 미래 세대가 지역에 안착할 수 있는 비전을 치열하게 모색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야 할 것이다. 다만 시도 모두 정치적 셈법을 앞세우는 것만은 반드시 경계해야 한다. 자칫하면 민심은 물론 지역의 미래까지 흐리는 패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