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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측의 경직성 탈피가 관건이다
2020년 01월 17일(금) 00:00
양 무 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
얼마 전 국내외 학자들과 현 한반도 정세에 대해 토론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해부터 학자들의 최고 관심사는 북한이 과연 핵을 포기하겠느냐는 것과 남북 관계에 적극적으로 임하겠느냐는 것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2018년 4·27 판문점 선언과 2019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를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동안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이러한 북한의 핵 폐기 의사를 전제로 전개되어 왔다. 그러나 핵 폐기의 순서·방식 등 구체적인 협상에 있어서 북미 양국은 서로가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디테일의 악마는 존재했고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결렬로 나타났다.

지난해 북한은 각종 미사일 발사를 통해 긴장을 고조시키고 실무 협상을 거부하면서 미국의 결단을 압박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은 없었다.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과 3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를 풀어 보려던 북한은 지난해 완전히 ‘통미봉남’으로 돌아섰다. 자신들이 주도권을 갖는 데 있어 한미 관계를 벌리고 우리를 초조하게 하면서 미국과의 담판에 올인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난해를 결산하고 올해를 전망해 보건대, 북한의 전략은 정세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반전시키는 데에는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연말 시한을 설정했지만 미국의 유연한 조치를 이끌어 내지 못했고 남북 관계 역시 합의 사항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하고 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북한이 내놓은 것이 ‘정면돌파전’이다.

북한이 예고한 새로운 길은 제재 해제에 집착하지 않을 것이며 제재가 계속되더라도 버티는 자력갱생식 경제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국방력은 계속 강화하여 전 세계가 깜짝 놀랄 새로운 전략무기를 공개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것도 지난 당 전원회의 결과에 나타난 북한의 전략인 것으로 분석된다. 남북 관계에 대해서는 아직 뚜렷한 반응은 없지만 ‘선미후남’의 기조는 계속해 나가겠다는 것이 김계관 담화에서 밝힌 내용의 일부이다.

그리고 이러한 북한의 입장에 대해 일부에서는 북한의 핵 포기 불가론과 남북 관계 단절, 대북 정책의 실패로 연결시키려 한다. 물론 올 한 해도 매우 불투명하고 유동적인 상황은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오랜 북한의 협상 전략이나 최근 일련의 행보로 볼 때 북미 대화와 남북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겠다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된다. 우선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 포기를 우선 조건으로 내걸고 있지만 연말연시 레드라인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고 북미 대화를 중단하겠다는 것을 명시적으로 밝힌 바 없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의 생일 축하 친서를 보냈고 북한이 즉각 반응을 보인 것도 북미 정상 간의 신뢰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음을 나타낸다. 남북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통상 신년사를 통해 대남 정책의 기조를 공표하던 것을 생략하고 정세 변화를 관망하고 있다. 북한은 대남 선전매체를 통해 대남 비난을 하고는 있으나 당국의 공식 입장은 드러내지 않고 있으며 지난해 수준에 비하면 수위 조절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지난 신년사와 이번 신년 기자회견에서 차분한 정세 판단과 신중한 대응을 강조했다. 남북 관계가 쉽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도 북미 간 교착 국면을 해소하는 데 있어 우리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노력을 주문하였다. 제재 국면이지만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협력을 전개하면 북미 대화의 긍정적인 여건이 조성될 수 있음을 설명하면서,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가 선순환 구조로 발전되어야 함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2032년 올림픽 공동 개최, 역도 및 탁구 선수권 대회 초청, 올림픽 단일 팀 구성, 남북 철도 도로 연결, 비무장지대의 국제 평화지대화 및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개별 관광 등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독자적 영역의 협력 사업들을 제안하였다.

문 대통령의 제안은 대부분 남북 간 이미 합의 사항이라는 점에서 의지만 있다면 이행이 어렵지 않다. 한미 공조를 저해하거나 대북 제재에 정면 위배되는 것을 하자는 것이 아니다. 남북 간 합의에 의해 독자적으로 가능한 부분부터 시작해서 분위기를 만들고 영역을 넓혀 나가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이 마치 제재나 한미 관계를 훼손하면서 무리하게 추진하는 것이 아님을 구분해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제 북한의 호응이 중요하다. 경직성을 탈피하여 우리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길 바란다. 북한이 북미 관계를 정상화시키고 정상 국가로서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서는 탄탄한 남북 관계의 뒷받침이 필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