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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의 중심가인 서든 크로스의 쇼핑몰에서 5분쯤 걷다 보니 거대한 스케일의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웅장한 주랑과 돔 양식의 지붕이 인상적인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이다.
취재차 들렀던 날은 증축공사로 건물 곳곳에 가림막이 내걸려 조금은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하지만 건물 정문 앞으로 방향을 틀자 뒷편과는 180도 다른 산뜻한 잔디광장이 방문객을 반긴다. ‘We will always the public library for all’. 모든 이에게 열려 있다는 현수막을 보자 마음이 따뜻해진다. 마치 먼 나라에서 건너온 이방인에게도 손을 내밀어 주는 것 같아서다.
도서관 안으로 들어서자 널찍한 로비와 대형 열람실이 방문객을 기다린다. 자칫 삭막할 수 있는 공간이지만 로비 벽면에는 호주의 아름다운 풍경과 일상을 담은 수십 여 점의 그림들이 전시돼 있다. ‘장식용’으로 몇점 걸어놓은 차원이 아니다. 도서관의 큐레이터가 직접 주제를 잡고 작가를 선정한 기획전이다. 멜버른 시민들에게는 이보다 더 좋을 수 업는 도심 속 갤러리인 셈이다.
열람실을 나오는 순간, 자원봉사자로 보이는 한 여성이 다가온다. 먼저 국적을 물어보더니 안내 데스크에 비치된 한국어 가이드 맵을 건넨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친절함이다. 그녀가 전해준 가이드맵에는 도서관의 간단한 소개에서 부터 하이라이트인 ‘라 트로브 열람실’(La Trobe Reading Room) 등 주요 시설들이 담겨 있었다. 1층 열람실인 ‘레드몬드 열람실’(Redmond Barry Reading Room)만 둘러 보고 도서관을 나가는 이들을 붙잡기 위해서다. 만일 ‘라 트로브 열람실’을 구경하지 않고 그냥 나간다면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의 진가를 접하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안타까움에서다.
그도 그럴것이 ‘라 트로브 열람실’은 그 어느 도서관에서 보기 힘든 건축미가 압권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6층에서 내려다 보는 내부 모습은 웅장한 파노라마를 보는 것 처럼 강렬하다. 1층에서 본 평면적인 열람실 풍경과는 다른 스펙터클한 장관을 연출한다. 1913년 건립된 8각형의 돔, 3만2000여 권의 책과 320석의 열람석이 어우러진 모습은 압도적이다. 특히 짙은 갈색 바닥에 주황색 빛이 선명한 8개의 책상이 마치 중심부로 부터 햇살처럼 퍼져 나가는 형상은 탄성을 자아낸다.
도서관의 4~5층에는 1896년부터 1968년까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으로 사용됐던 코엔 갤러리(Cowen Gallery)가 자리하고 있다. 도서관의 회화컬렉션(Library’s Pictures Collection)이 소장하고 있는 20세기 미술사조의 한 장르인 재현주의(representation)의 거장 에릭 타케(Eric Thake), 아서 보이드(Arthur Boyd), 프레드 윌리엄(Fred Williams), 주안 다빌라(Juan Davila) 등의 작품을 상설 전시한다.
마침 방문했던 기간에는 책이 탄생하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변천사를 조명한 기획전 ‘책의 세계’(World of the Book)전이 열리고 있었다. 전시장 입구에는 ‘책은 눈의 확장이다’(The book is an extention of the eye·…)라고 역설한 미디어 학자 마샬 맥루한(Marshall McLuhan)의 명언이 내걸려 있다. 오늘날 종이책이 나오기 까지 수많은 변천 과정을 다룬 전시물이 흥미롭다.
150여 년의 역사가 말해주듯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은 살아 있는 문화보고이기도 하다. 유명 탐험가인 제임스 쿡 선장의 저서와 멜버른을 창건한 존 배트먼(John Batman), 존 패스코 포크너(John Pascoe Fawkner)의 일기 등 빅토리아주의 중요한 사회·문화적 유산은 물론 2백만 권의 서적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의 가치는 공공성과 개방성이다. 도서관 내 공부를 위한 열람실을 제외하면 일반 자료 열람실과 전시실 등에서는 일부 간단한 음식의 반입이 허용된다. 도서관 내에서도 ‘정숙’해야 할 장소와 행동의 제약이 없는 ‘자유’로운 장소의 구분이 명확했다. 다른 도서관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열린 마인드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체계적인 서비스도 자랑거리다. 명실공히 다문화국가로 알려진 호주는 다문화자료에 대한 장서 개발을 위해 국가별 인력을 고용하고 있다. 각 국가별로 채용된 인력들을 통해 다문화자료를 수집하고 도서관 차원에서 서비스를 실시하며, 다국어 웹페이지와 대출시스템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또한 사전예약을 하면 도서관 투어를 통해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도서관 곳곳에 배어있는 멜버른의 역사와 정신을 느낄 수 있다.
멜버른 도서관의 팀 호건(Tim Hogan)씨는 “멜버른 시민들에게 도서관은 매우 친근한 장소이자 놀이터다. 특히 다문화가정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다국어 서비스 덕분에 외국인들의 발길도 끊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일부 프로그램의 경우 관광객이라도 신청하면 바로 참여할 수 있을 만큼 개방적이다.
이와함께 빅토리아 주립도서관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인들이 접근할 수 있도록 도서관 홈페이지를 통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각 국가별 언어로 모든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으며, 제공하는 콘텐츠 또한 다양하다. 도서관 웹사이트에서는 종이책 외에 E-Book의 대여와 구입도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정희연(54)씨는 “우리나라 도서관에서는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서비스와 프로그램에 놀랐다”면서 “처음 방문한 외국 관광객에게도 도서관의 프로그램과 시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문호를 개방하고 있는 점은 매우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멜버른=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