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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경계 없이 흘러가는 바람과 구름을 보고 살았습니다. 저편의 자연은 무한히 자유로운데 이편의 나는 꼼짝없이 갇혀서 기상을 관측해야 했지요. 답답한 것이야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내면은 늘 자유를 꿈꾸었죠.”
35년간 공군 기상대에서 근무했던 이가 첫 시집을 펴내 ‘화제’다. 주인공은 광주전남작가회의 사무국장 주영국 시인. 얼핏 ‘공군’, ‘기상대’, ‘시인’은 부조화의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창작의 분야에서는 이질적인 요인들이 이색적인 울림과 독특한 정서를 환기한다.
첫 시집을 건네는 주 시인은 담담하면서도 조금은 상기된 표정이었다. “35년간 공군 기상대에서 근무했다”는 말이 호기심을 자극했다. 문학적 이력만 보면 시집을 내도 몇 권은 냈을 법한 연배인데, 이제야 작품집을 출간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직업군인으로 30년이 넘게 군복무를 했다”며 “기상대에서 하늘만 바라보며 살다보니 끊임없이 내면의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정제되면서도 단단한 심지가 느껴지는 건 그러한 이력과 무관치 않았다.
신안의 작은 섬 어의도에서 태어난 시인은 서정적인 기질이 다분했다. “첫 작품집이라 일부러 고향 섬 이름을 저자 이력 란에 넣었다”며 웃었다. 작품에 시적 공간으로서의 고향과 밥벌이를 위해 몸담았던 생계의 공간, 그럼에도 창작을 위해 숨어들어야 했던 내적인 공간이 여실하게 펼쳐져 있는 건 그 때문이다.
“군에 있을 때 금서로 규정된 책들과 진보 매체가 발간하는 잡지들을 꾸준히 읽었습니다. 우리 사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2000년대 초반에 전태일문학상을 받은 후 진보적인 문학회에 가입해 활동도 했구요. 그러다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 당시 블랙리스트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는 비록 군인 신분이었지만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는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고전을 금서로 지정하고, 서명 하나 때문에 불이익을 받는 그런 세상은 바람직한 사회가 아니라는 의미다.
틈 날 때마다 작품을 써두었던 건 그러한 연유 때문이다. 표제시 ‘새점을 치는 저녁’은 그의 문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새점을 치던 노인들이 돌아간 저녁/ 공원의 벤치에 앉아 나도 새를 불러본다/ 생의 어디에든 발자국을 찍으며/ 기억을 놓고 오기도 해야 하였는데/ 난독의 말줄임표들만 이으며 지내왔다/ 누군가의 경고가 없었다면 짧은/ 문장의 마침표도 찍지 못했을 것이다…”
‘새점을 치는 저녁’에 대해 오홍진 평론가는 시에 “파장이 된 인생들이 이곳저곳에” 등장한다고 풀이했다. 다들 나름의 인생을 살아온 것인데 “누구는 지금 통증에 시달리고, 또 누구는 공터에 버려진 채 추억을 되씹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화자는 우리 시대를 사는 민초들의 모습을 상기한다. ‘허방세상 낙조’, ‘봄 이불 한 채’ 등의 시에서 느껴지는 화자의 시선과 내면은 따스하면서도 애잔하다.
시인은 군 복무를 하며 전국을 돌다시피 했다. 백령도, 예천, 사천, 논산 등 이곳저곳을 옮겨 다녔고 이라크 파병지에서도 근무했다. 각각의 시들에는 섬의 원초적 정서와 여러 곳을 떠돌았던 유목적 감성, 내면에 잠재된 섬 특유의 분위기가 응결돼 있다.
나해철 시인은 추천의 글에서 “자연의 결에 자신의 영혼을 실어 한없이 깊어진 기록이 여기 있다. 주영국 시인은 스스로를 무한하고 영원한 것들과 하나가 되게 하는 법을 알고 있다”며 시간과 벗이 되어 시간이 인간들과 만나는 비의(悲意)들을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더불어 자연과 역사 속의 결기 앞에서 단정하게 목숨의 강건함을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평했다.
한편 주영국 시인은 19회 오월문학상과 2010년 ‘시와 사람’ 신인상을 수상했다. 현재 한국작가회의 회원과 죽란시사회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