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세계 문화유산 대흥사 <11> ‘괘불도(掛佛圖)와 장군샘’
‘야단법석’때 걸었던 불화… 서산대사 법맥도 면면히
해탈의 세계 모두에게 열려있다는 ‘일주문’
석가모니 중심 왼쪽 문수보살 오른쪽 보현보살 ‘괘불도’
고산 윤선도가 이름 붙여준 ‘장군샘’
“승려들 지혜·기력이 장군을 배출할 샘 유래”
2019년 06월 19일(수) 04:50
















“내가 숲속으로 들어간 것은 인생을 의도적으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 다시 말해서 인생의 본질적인 사실들만을 직면해보려는 것이었으며, 인생이 가르치는 바를 내가 배울 수 있는지 알아보고자 했던 것이며, 그리하여 마침내 죽음을 맞이했을 때 내가 헛된 삶을 살았구나 하고 깨닫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쓴 ‘월든’(소담출판사·2002)에 나오는 구절이다. 소로는 도시 문명을 벗어나 월든 호수가에서 머물렀다. 그는 숲 속의 철학자이자 산책자였다. 그곳에서 소로는 자신의 인생과 대면했다. 그리고 인생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문했다.

소로가 ‘월든’에서 했던 말은 하나의 경구다. 가령 이런 말들은 법어 이상의 울림을 준다. “그대의 눈을 내면으로 돌려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 아직 발견되지 않는 수많은 곳을 보게 되리라. 그곳을 여행하라. 그리하여 자신의 우주에 통달하라.”

해남 대흥사, 아름드리 천년 숲길을 걸으며 생각한다. 나무와 나무가 연한 모습이 보기 좋다. 나무들은 함께 숲을 만들고 산을 이룬다. 새들은 새들과 벗하여 내남없이 이곳에 깃든다. 이름 모를 벌레와 꽃과 식물도 스스럼없이 숲에 안긴다. 품은 다사롭고 향기로워 눈에 닿는 풍경마다 하나같이 걸작품이다.

그대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대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아니 그대가 가는 길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가. 산문 밖에서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것들이 누에고치 실처럼 풀려 나온다. 산문이 주는 힘이다. 그러므로 사바의 세계에서 마음이 다친 이들은 산사의 숲을 찾을 일이다.

피안교를 지나면 차츰차츰 익숙한 풍경이 들어온다. 그리고 당도한 일주문(一柱門). 문은 문인데 네 기둥이 없다. 문짝도 없어 그냥 들고 난다. 경계가 없으니 중생들은 누구나 들 수 있다. 부처의 세계, 해탈의 세계는 모두에게 열려 있다는 뜻이리라. 이름하여 대도무문(大道無門). 오는 자 막지 않고, 가는 자 붙잡지 않을 거였다.

누구나 들어올 수 있으니 ‘야단법석’(野檀法席)이 웅장했을 것 같다. 오해하지 마시라. 야단법석은 좋은 의미이니. “야외에서 크게 펼치는 설법 강좌”를 야단법석’(野檀法席)이라 한다. 고승대덕 스님들이 법문을 강론할 때면 수많은 중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다 보니 적잖이 떠들썩하고 소란스러웠던 모양이다. 대중이 아는 ‘야단법석’(惹端法席)은 문자 그대로 경황이 없고 무질서한 상태를 일컫는다.

박충배 성보박물관장은 “법당이 좁아 몰려든 인원을 수용할 수 없을 때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했다”며 “석가가 설법을 했을 때는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인파가 운집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박 관장은 “야단법석이 불교에서 유래됐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다”며 “지금은 떠들썩하고 어수선할 때를 가리는 말로 일반화됐다”고 덧붙인다.

서산대사 법맥이 흐르는 대흥사에서 대법회가 열리면 장관이었을 것 같다. 13명의 대종사와 13명의 대강사를 배출한 가람이니 말이다. 수행납자의 수행처이자 ‘종찰’(宗刹)로서 조선 불교계를 이끌어 온 대흥사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러고 보니 대웅보전과 천불전 앞에는 돌기둥이 세워져 있다. 일반 사찰에서는 이를 당간지주(幢竿支柱)라 한다. 법회가 있을 때 기를 단 장대(당간)를 이곳에 묶었다. 한편으로 당간지주는 통일신라시대부터 사찰 앞에 설치해 신성한 영역을 알리는 표식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대흥사에서는 당간지주보다는 괘불지주라 한다. 야외 불교 의식 때 사용하는 대형 불화를 괘불도(掛佛圖) 또는 괘불화(掛佛畵), 괘불탱화(掛佛幀畵)라고 한다. 특이하게도 대흥사에는 대웅보전과 천불전에 괘불지주가 있다. 이어지는 박 관장의 설명.

“금당천을 경계로 북원과 남원으로 구성된 가람배치의 특성상 오래전 대흥사에는 두 분의 주지가 존재하지 않았나 추론을 합니다. 성보박물관에는 당시에 사용됐던 괘불화가 존재하지요. 높이가 9m 60cm, 폭이 7m40cm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1552호로 지정돼 있습니다.”

대흥사 괘불화는 일명 5존도라 불린다. 맨 중심에 석가모니부처님과 왼쪽 협시불이 문수보살, 오른쪽 협시불이 보현보살이다. 상단의 부처님은 아미타와 약사여래니, 모두 다섯 분이 모셔져 있는 셈이다.

“땡그렁” 그윽한 대흥사 풍경소리 아득히 밀려온다. ‘야단법석’(惹端法席) 떨지 말라고 경고하는 듯하다. 삿된 생각이 저만치 줄달음쳐 달아난다. 마음을 가라앉히고 눈에 닿는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맑은 소리, 귀가 열린다.

“세상의 모든 경계가 다 마음으로부터 발한다. 마음은 화가와도 같이 온갖 세상의 모습을 펼쳐낸다. 만상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생기는 법. 온갖 현상이 마음이 근인이 되어 생겨나니 마음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화엄경’의 한 구절이다. 결국 세상을 사는 것은 마음을 닦는 일 이상도 이하도 아닐 터. 부처님은 자아는 본래 없다는 무아(無我)를 설파했는데, 우리의 자아는 무시로 불쑥불쑥 고개를 드는지, 마치 시퍼런 파도가 해변을 향해 득달같이 달려오는 것 같다.

경내를 돌다보니 목이 마르다. 6월의 바람은 뜨뜻미지근하다. 표충사 호국문 오른쪽으로 향하여 ‘장군샘’에 도착한다. 샘물이 솟아오르는데 일명 용천수라 한단다.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뜻한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내려온다.

오랜 옛날 큰병에 걸린 스님이 이 물을 마시고 나았다는 얘기다. 스님이 자정 무렵 물이 소용돌이치며 추녀에까지 솟구쳐 오를 때 마셨던 모양이다. 이후로 모든 질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약을 달이거나 찻물을 끓일 때 용천수를 최고로 여겼다는 설화다. 장군샘이라는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붙였는데, 이곳을 찾은 고산이 승려들의 지혜와 기력이 능히 장군을 배출할 만한 샘이라 칭송한데서 데서 유래했다.

대흥사는 눈만 돌리면 문화재요 천지가 이야기거리다. 세계문화유산에 값하는 가치가 곳곳에 담겨 있다. 무엇보다 대흥사(大興寺) 이름의 의미와 상징이 가볍지 않다. 크게 흥하는 집안은 크게 흥하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수많은 대중이 대흥사를 아끼는 것은 무엇이겠는가. 이곳에 오면 마음이 편하고 청정한 기운이 감돈다. 비움의 철학이 있다. 고매한 고승대덕의 법맥이 흐르는 곳이라 마음을 다잡게 된다.

“청정한 마음이 청정한 행위를 낳고 악한 마음이 악한 행위를 낳는다. 청정함으로 세계가 깨끗하며, 마음이 더러움으로 세계 또한 더럽다. 마음이 주인이 되어 모든 것을 만드나니, 일체법이 마음에 비롯되지 않는 것이 없다.” (심지관경)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