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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는 유령
2019년 06월 17일(월) 04:50
최근 몇몇 지인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원자력 전문 기업의 대표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영광 한빛1호 원자로가 갑작스러운 열출력 증가로 수동 정지된 사고 직후였다. 한빛원전은 부실시공 등으로도 문제가 많이 지적됐던 만큼 ‘무언가 잘못돼 방사능이 유출된다면 직원들은 물론 인근 지역민의 건강에도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겠느냐’는 질문을 던져 봤다.

A씨의 답변은 ‘예상대로’ 단호했다. “원전에서 방사능은 절대 유출되지 않는다. (나는) 30년간 원전산업에 종사해 왔지만 이렇게 건강하다. 원전 직원들이나 인근 주민도 마찬가지다. 문제가 생겼거나 예상된다면 그들이 가만히 있겠나?”

‘원자력발전소는 방사능 유출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어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게 주장의 요지였다. 전문적인 지식도 없거니와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입을 다물었지만 찜찜한 기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얼마전 랜들 먼로가 지은 ‘위험한 과학책’이라는 책을 읽다가 눈에 띄는 구절을 발견했다. “감마선에 다량 노출되어도 인체의 DNA가 손상된다. 방사선에 가장 민감한 세포는 골수와 소화관에 있는 세포들이다. 극도로 많은 양의 방사선에 노출되면 금세 죽을 수 있지만, 이 경우는 DNA 손상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혈액-뇌 장벽이 분해되어 뇌출혈로 급사하게 된다. 방사선 중독은 ‘걸어 다니는 유령’ 시기, 즉 잠복기가 있다. 신체가 아직 기능은 하지만 새로운 단백질은 전혀 합성될 수 없고, 면역체계가 무너지는 시기다. 중증 방사선 중독의 경우 면역체계 붕괴가 사망의 제1원인이 된다. 백혈구가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신체가 감염과 싸울 수 없어 평범한 박테리아까지 신체에 침투해 마구 휘젓고 다니게 된다.”

원전과 국민의 건강은 둘 다 국가 안위의 핵심적인 이슈다. 그날 지인들과의 대화는 “방사능이 차단된다니 좋은 일이지만, 전문적이고 공개적인 역학 검사를 통해 ‘원전 지역 주민의 건강에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공식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정도로 마무리가 됐다. 정말 그런 절차가 있었으면 좋겠다.

/홍행기 정치부장 redpla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