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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기는 축구
2019년 06월 14일(금) 04:50
‘투혼’. 2010년 남아공월드컵에서 한국 선수들은 이 두 글자를 유니폼에 새기고 뛰었다. 월드컵에서는 특히 부상 투혼이 많았다. 김태영은 코뼈 부상으로 ‘마스크 투혼’을 펼쳤고, 황선홍과 이임생은 머리에 붕대를 감았지만 피를 흘리며 공중볼을 다퉈 지켜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우리 선수들은 부족한 기량을 정신력과 투혼으로 만회하려 이를 악물고 뛰었고 실수를 하면 자책감에 시달렸다.

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하석주는 멕시코전 선제골을 넣고도 백태클로 퇴장 당해 ‘영웅’에서 ‘역적’으로 전락했다. 온갖 비난에 시달리고 신변의 위협까지 느꼈던 그는 마음속에 꼭꼭 숨겨 두었던 당시의 심정을 20년이 지난 후에야 토로했다. “며칠 동안 밥도 못 먹고 사람들을 피해 낚시를 갔는데, 첫 낚시에서 곧바로 잉어 한 마리가 올라왔어요. 잉어의 눈이 마치 내 눈처럼 불쌍하데요. 그래서 잉어랑 대화하며 한없이 울었죠”

대표 팀 주장 기성용은 언행에 대한 비난과 기량에 대한 찬사를 동시에 받기도 했다. 그는 “언제까지 세계 무대에서 정신력과 투지만 얘기할 거냐? 이런 거 말고 우리의 색깔을 가지고 축구를 축구답게, 전술적으로 세련된 경기를 한 번쯤 해 보고 싶다. 은퇴하기 전에” 그러나 그의 꿈은 A매치 110경기를 치르고 은퇴할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월드컵 등 큰 대회 때면 주변이나 언론에서 쥐어짜는 듯한 무엇인가를 얘기해 항상 쫓기는 입장이었다고 아쉬워했다.

죽기 살기로 뛰며 투혼을 발휘하던 한국 축구의 오랜 전통과 결별하는 새로운 세대가 나타나 신선함을 주고 있다. U-20 월드컵에서 결승에 오른 우리 선수들이다. 1999~2001년생이 주축을 이룬 이들은 대회 전 ‘16강도 쉽지 않다’는 전망을 비웃듯 ‘우승이 목표다’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수준급 개인 기량과 다양한 전술 변화. 그리고 통쾌한 역전승. 재기발랄한 이들은 그라운드를 축제의 장으로 만들고 승부를 즐기며 신나게 뛴다. 팀 동료들을 위한 배려와 겸손, 품격 있는 매너도 넘친다. 밀레니엄 세대의 ‘즐기는 축구’가 역사를 새롭게 쓰고 한국 사회에 의미 있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유제관 편집1부장 jk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