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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공항 단상
2019년 06월 13일(목) 04:50
호남 최초로 비행기를 몰고 광주·나주·목포·강진·장흥 상공을 날았던(1924년 2월 10일부터 16일까지) 이는 장흥 출신 이상태(李商泰)다. 우리나라 최초 비행사인 안창남과 함께 1923년 일본 비행경기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열여섯 살 나이로 일본에 건너가 3년 만에 삼등비행사 자격을 얻었다. 스물한 살 파일럿의 등장에 도민들은 열광했고, 뒤를 이어 1928년 조성순, 1938년 고선주 등의 전남 출신 파일럿들이 탄생했다.

비행기가 이착륙하기 시작한 것은 1929년 3월의 일이다. 일제는 비행기 10여 대를 동원한 답사 끝에 송정리에 간이비행장을 만들고, 같은 해 9월 경성~광주 간 우편물 전용 정기 항공편을 뒀다. 또한 일제는 1930년 경양방죽을 매립해 정식 비행장을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7년이 지난 1937년 극락면 계수리(서구 치평동)와 과거 상무대가 있던 자리를 비행장 부지로 정한 뒤 공사에 착수했다. 1938년 5월 14일 처녀비행에 성공하고, 1년 6개월여 동안 운영한 끝에 1939년 11월 26일 정식 비행장을 완공했다. 이때부터 매주 세 차례 경성까지 민간인을 태운 비행기가 오갔다.

여기에 일본 해군항공대 소속 훈련비행대가 주둔하면서 민간공항과 군공항의 동거가 시작됐다. 해방과 함께 이 시설은 미군이 사용하다가 1948년 9월 25일부터 단계적으로 우리 군이 시설 인수에 나섰으며, 1949년 6월 중단됐던 광주~서울, 광주~부산 28인승 항공기가 취항하면서 다시 하늘길이 열렸다. 27년간 운영되던 상무대 비행장이 송정리(광산구)로 이전해 광주공항이라는 이름으로 새 출발한 것은 1966년 7월의 일이다.

민선 7기 광주시는 2021년 광주 민간 공항을 무안공항으로 이전하기로 약속한 바 있다. 다만 군공항 이전은 여전히 논란인데 국방부의 전향적인 대처가 아쉽다. 군공항 이전은 국가 방위 측면을 가장 중시해야 하는 국가의 중대사이지만 그렇다고 대도시 광주 한복판에 민간 공항 없는 군공항이 계속 자리할 수도 없다. 아무쪼록 광주 공항 이전이 광주·전남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지역민 모두가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 /윤현석 정치부 부장 chado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