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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영 태 전남대 역사학 교수] 이희호 여사님, 사랑합니다
2019년 06월 12일(수) 04:50
이희호 여사께서 세상을 떠나셨다. 금년은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서거하신 지 10년이 되는 해인데 이희호 여사까지 우리의 곁을 떠나시게 되니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다. 여사님의 명복을 빌며, 훌륭한 삶을 살아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어 주신 데 대해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저승에서 사랑하던 김대중 전 대통령님과 만나 다시 제2의 삶을 사시길 바란다.

이희호 여사의 삶은 그 자체로서도 빛났지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함으로써 더욱 빛났다. 여성 운동가였던 이희호 여사가 김대중을 처음 알게 된 것은 부산 피난 시절이었지만 두 사람이 부부로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한참 후인 1963년이었다. 이 때 이희호 여사는 미국 유학을 마치고 다시 여성 운동에 몸담고 있었고 청년 정치인 김대중은 첫 번째 부인을 잃은 지 4년 가량이 지난 시점이었다. 당시 김대중은 정치정화법에 묶여 정치를 하지 못하고 있었고, 생활도 매우 곤궁한 처지였다. 그러나 이희호 여사는 그런 그의 처지를 잘 이해해주었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에 대해 남자로서도 매력을 느꼈지만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조국 통일에 대한 큰 꿈을 가진 이 남자의 꿈이 꿈으로 끝나게 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을 도와야겠다.’ 그것이 이희호 여사를 움직였다. 인물을 알아보는 그의 혜안이 새삼 존경스럽다.

김대중 대통령은 유신 시대와 전두환 군부 독재 체제하에서 죽음의 고비를 여러 번 맞이했다. 그가 그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데에는 그 자신의 용기와 인내가 기본적 힘이 되었지만 이희호 여사의 역할도 컸다. 1980년 사형 선고를 받은 남편 김대중을 면회한 이희호 여사는 그 앞에서 기도를 하면서 “하나님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했다. 이희호 여사의 이런 돈독한 믿음과 중심 잡기는 사형수 김대중의 마음을 안정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이희호 여사는 기도와 함께 김대중 구명 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녀는 전 세계의 저명한 지도자들에게 서신을 보내 남편 김대중의 구명을 호소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재임 중 대한민국을 IT 강국으로 만들었는데 그에게 정보 산업 육성이라는 영감을 준 것은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었다. 그런데 김대중은 감옥에서 이 책을 받을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런 책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이 주문한 책 외에 그가 꼭 읽기를 바라는 책들을 감옥에 보내주었는데 그 책 중의 하나가 ‘제3의 물결’이었다. 이희호 여사가 남편 김대중을 어떻게 내조했는지를 잘 알려주는 대목이다.

여성 운동가 이희호 여사는 김대중과 결혼하기 전 YWCA 총무를 지내는 등 여성 운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김대중과 결혼하면서 여성 운동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엄밀히 따지면 물러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김대중을 위대한 정치인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여성의 인권 신장에 큰 성과를 냈기 때문이다. 그는 김대중과 함께, 혹은 그를 통해 남녀 차별 금지법 제정, 여성부 신설, 여성재단 발족 등 여성의 지위 향상을 위해 큰 역할을 했다. 비록 단명에 그쳤지만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우리 역사상 최초로 여성 총리로 발탁한 것이나 다수의 여성 장관을 배출한 데에는 이희호 여사의 조언이 크게 작용했다.

이희호 여사는 항상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이유는 그의 활동과 영향력이 이권이나 세를 과시하는 그런 통속적 성질의 것이 아니라 봉사와 헌신을 중심으로 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서거하기 직전 유언에서도 “하늘나라에 가서 우리 국민을 위해, 민족의 평화 통일을 위해 기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그를 어찌 존경하고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나라의 역대 대통령들은 대부분 불행하게 최후를 마쳤다. 이런 점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희호 여사를 좋아하고 지지한 사람은 행복하다. 두 분을 생전에는 물론이요 역사 속에서 계속 존경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어 너무 기쁘다. 고결한 삶을 살다 가신 이희호 여사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거듭 전한다. 여사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