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숙문(王叔文, 758~806)은 월주 산음 출신으로 순종 즉위 후 유종원, 유의석 등과 함께 개혁정치를 시도했다. 헌종이 제위에 오르자 사사되었다.







5호 16국 시대 전진(前秦)의 부견을 보좌한 왕맹의 후손이다. 그는 당대 최고의 바둑 고수였는데 덕종은 한림원 대조(待詔)로 태자 이송을 보좌토록 하였다. 궁시(宮市) 사건이 태자의 신임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궁시는 조정의 관리가 궁밖에서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는 행위인데, 797년 소관 업무가 환관에게 넘어가자 환관의 가렴주구가 심화되었다. 태자는 궁시의 폐해를 듣고 덕종에게 직언 할 것을 결심했다. 다른 참모들은 모두 태자의 용기를 칭송했지만 그만이 반대했다. 직접 황제에게 환관의 부정을 고발하면 태자가 백성들로부터 인기를 얻으려는 행위로 오해받을 수 있음을 경고했다. 태자는 “선생이 아니면 과인이 큰 실수를 할 뻔했소”라며 크게 신임하게 되었다. 그는 부정부패와 환관의 전횡으로 왕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마음 아파했다. 왕숙문과 태자 사이에 굳건한 주종 관계가 형성되었다.

문제는 태자의 건강이 여의치 않다는 점이다. 덕종이 병으로 쓰러진 상황에서 태자도 중풍으로 말도 못하고 육신이 마비되었다. 덕종은 품행이 나쁜 고모 고국공주의 딸인 소씨가 태자비인 것이 마음에 걸려 태자를 교체하려는 생각을 가진 적이 있었다. 원로대신 이필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폐하의 자손들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반드시 적통을 지켜야 합니다”고 주장해 교체를 백지화시켰다. 왕숙문 등의 보좌로 천신만고 끝에 제위에 올랐다. 805년 정월 26일 태극전에서 즉위하니 순종이다.

순종 즉위 후 기거사인 겸 한림학사가 되어 영정혁신(永貞革新)을 주도했다. 감찰어사 유의석, 감찰어사이행 유종원, 이부시랑 위집의, 동향 출신 한림학사 능준 등이 태자당을 형성해 개혁의 주역으로 나섰다. 환관 이충언, 순종의 후궁 우소용도 아군이었다. 순종은 위집의를 동중서문하평장사로 임명해 재상으로 발탁했다. 두우를 탁지사 겸 염철사로 임명해 재정을 관장토록 했다. 첫 번째 개혁 조치로 경조윤 이실을 통주자사로 좌천시켰다. 황족 출신으로 폭정을 일삼고 백성을 괴롭힌 탐관오리였다. 경기지역에서 밀린 세금을 면제해 준다는 황명을 어기고 강제로 징수해 백성의 공분을 샀다. 관중 지역의 가뭄이 심하자 백성들이 세금 감면을 요청했으나 중간에서 이를 차단했다. 대사면을 단행했다. 잡세 징수제도도 폐지했다. 연체된 세금 526,814 관전을 탕감했다. 특히 백성을 괴롭힌 오방세(五坊稅) 폐지에 백성들이 감읍했다. 오방세는 황제의 사냥에 필요한 독수리·매·개 등을 사육하는데 필요한 재원을 얻기 위한 세금이었다. 궁시도 폐지했다. 궁녀 300명과 교방여악 600명을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육지, 정여경 등 지방으로 내친 관료들을 불러들였다. 지방 번진세력을 약화시켰는데 검남서천절도사 위고가 삼천지역도 함께 다스릴 수 있도록 요청하자 그를 처형하려 했다.

순종의 건강이 악화되는 사이 개혁파와 환관의 갈등이 심화되었다. 환관의 병권을 박탈하려는 노력은 결사저항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환관의 우두머리 구문진은 왕숙문의 한림학사 직위를 빼앗았다. 한림학사는 ‘내상(內相)’으로 불릴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이 컸는데 이를 박탈당한 것은 치명적 패배였다. 이런 상황에서 순종은 장자 이순을 태자로 삼는다는 조서를 내렸다. 그와 사이가 나쁜 절도사 위고는 한술 더 떠 태자를 감국으로 임명해 병약한 황제 대신 정무를 처리토록 주청했다. 805년 6월 왕숙문은 모친상을 당해 관직을 물러났다. 왕비도 중풍으로 한림원을 떠났다. 8월 순종은 황위를 태자에게 넘겨주고 태상황의 신분으로 흥경궁으로 옮겼다. 왕숙문은 유주사호참군, 왕비는 개주사마로 좌천되었다. 왕숙문 일파 8인 모두 좌천되었다. 후일 이들을 이왕팔사마(二王八司馬)로 불렀다. 이로써 영정혁신은 좌절되었다. 806년 순종이 승하하자 사사되었다. 신당서와 구당서는 그를 권력에 집착한 무례한 인물로 묘사했다. 사마광의 자치통감도 비슷한 평가를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