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완도는 청해진의 본거지이자 해산물의 보고로 알려져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오늘의 완도를 이룬 토대가 됐으며 21세기 완도를 견인할 핵심 근거이기도 하다. 역사적으로나 물산(物産)적으로나 완도가 ‘보고’(寶庫)로 수렴되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여기에 ‘완도의 브랜드’인 장보고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기에 국제해양시대 완도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완도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의로움과 근기다. 완도에 갈 때면 보게 되는 푸른 바다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의향(義鄕) 완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파란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은 풍부한 물산뿐이 아니어서 의지와 기개, 도전과 창조 정신은 굽이쳐 흐르는 파도처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완도는 일제 강점기 때도 항일운동이 가장 격렬하게
일어났던 고장이다. 1920년대 소안도에서 송내호(1895~1928)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송내호는 민족해방 비밀결사사조직을 이끌며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반외세 반일운동은 소안학교가 구심점이 됐고, 농민운동, 교육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연계돼 들불처럼 번졌다.
이러한 정신의 원류는 이순신의 나라사랑과 불의에 항거했던 의사(義士) 허사겸(許士謙)의 정신과도 맥이 닿아 있다. 완도 가리포 농민항쟁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첨사 이상돈의 학정(虐政)에 항거했던 봉기였다. 이상돈은 가혹한 폭정의 대명사였다. 그는 사익에 눈이 멀어 소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다. 선정을 베풀어야 할 수령이 오히려 민초를 착취하고 학대했으니 원성이 자자했음은 물론이다.
가리포진(완도의 옛지명)은 군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매우 중요한 지역이었다. 첨사의 직제가 다른 진에 비해 높았던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문헌에는 가리포 첨사는 당상관(종3품 지금의 차관급)이 발령됐다. 다른 지역 수군진에는 당하관으로 종5품이나 6품이 발령된 것이 일반적이었다.
마광남 청해진선박연구소장의 안내에 따라 봉기가 발발했던 곳을 둘러본다. 마 소장은 “이곳 첨사의 품계가 높은 것은 서남해안과 제주해역을 방어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급한 대로 완도에는 배를 만드는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소나무가 많았다. 근동에 청해진 시대부터 배를 만들었던 부추언이라는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마 소장은 “원래 황장목은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던 질 좋은 소나무를 일컬었다. 가리포진은 노량해전 승전의 주역이 됐던 지역으로 궁궐에서 소요되는 나무나 선박을 건조하는 황장목이 많이 분포돼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완도)에서 배를 만든 기록들을 살펴보면, 1460년 조전선(遭戰船) 100척을 만드는데 여러 고을에서 선장(船匠) 100명, 목장(木匠) 200명을 뽑아서 변산과 완도에 보내라는 기록이 있다. (국역왕조실록 세조 6년(1460) 7월 1일)
1883년(계미년) 11월 18일 자시(밤11시~오전 1시), 주모자인 허사겸은 허공을 향해 나팔을 불었다. 새벽녘 고요한 바다로 나팔 소리는 아스라하게 퍼져나갔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 숨어 있던 군중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불의한 세상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결기가 깃들어 있었다. 마침내 ‘계미민요’(癸未民擾)의 의로운 불길이 가리진포에서 타올랐다.
“가리포주민의 재산과 생명, 처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중이 일어나라. 이상돈을 잡아 완도에서 추방하고 이상돈에게 아부하고 이상돈의 손과 발이 되어 있는 관속들과 협잡배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빼앗긴 사람, 맞아 병신 된 사람, 정조를 빼앗긴 부녀자들까지 11월 18일 석장리 모래밭에 모여라.”(장보고연구회 ‘의사 허사겸’, 2013, 인쇄메이드)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이른바 ‘君舟民水’(군주민수)다. 후한서에 나오는 그 말은 민심이 천심이고 백성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노하면 바다를 뒤엎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허사겸을 비롯한 농민들은 빠르게 관아로 진입해 들어갔다. 최도일, 박의중, 최여집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무방비상태였던 옥문을 부수고 갇혀 있던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농민들은 벌벌 떨고 있는 첨사를 포박했다.
이튿날 첨사 이상돈은 군중들에 의해 원동 나루를 건너 달도로 유폐됐다. 이 과정에서 첨사와 관속들에게 수시로 수탈을 당했던 인근의 강진 사초리 주민들도 가세했다. 군중들은 동헌을 무너뜨리고 첨사를 잘못 보좌하고 탐학에 일조했던 하리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새로운 첨사가 부임하기 전이라 가리포진은 다소 어수선했다. 농민들과 유지들은 도민대회를 열어 중지를 모았다. 그리고 향도청(鄕道廳)을 설치해 최여안을 향도 유사로 선정했다. 이어 박일지, 김보국, 조내익에게 각 부분을 맡겨 향촌 자치를 실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정영래 완도문화원장은 “향도청은 동학농민항쟁 초창기에 설치됐던 집강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주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수습하는 모습은 선진적인 자치제의 자질을 갖춘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자 이내 피바람이 몰아쳤다. 조정은 장흥부사에게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그 보고에 따라 항쟁 주동자인 허사겸을 전라병영으로 압송해 효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가리포 주민을 대신해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허사겸에게 돌아온 것은 효수라는 참극이었다.
그러나, 허사겸은 누구에게도 희생의 몫을 돌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안아 감내했다. 장흥부사에 이어 전라감사가 올린 장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많은 백성을 모아 감히 공동(恐動)할 계책을 부린 자는 첫째도 허사겸이고 둘째도 허사겸입니다.”
그렇게 허사겸은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의 희생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민란은 허사겸 한 사람의 효수로, 나머지 사람들은 유배로 결정되면서 막을 내렸다. 물론 침탈을 일삼았던 첨사 이상돈은 의금부로 압송돼 국문을 당했고, 빼앗은 재물은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허사겸의 사당인 창의사를 둘러보며 진정 의로웠던 그를 생각한다. 선생의 묘는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돼 있으며 매년 추모제를 개최한다. 지난 1965년 세운 추모비는 당시 폭정에 항거했던 허사겸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1200년 전 장보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말에 의로움을 보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므로 허사겸은 진정 용기있는 의인의 표상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
/완도=정은조 기자·전남주재총괄본부장
이러한 완도의 힘은 어디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의로움과 근기다. 완도에 갈 때면 보게 되는 푸른 바다는 이렇게 속삭이는 것 같다. “의향(義鄕) 완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파란 바다가 품고 있는 것은 풍부한 물산뿐이 아니어서 의지와 기개, 도전과 창조 정신은 굽이쳐 흐르는 파도처럼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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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났던 고장이다. 1920년대 소안도에서 송내호(1895~1928)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이 펼쳐졌다. 송내호는 민족해방 비밀결사사조직을 이끌며 조직적인 항일운동을 전개했다. 이러한 반외세 반일운동은 소안학교가 구심점이 됐고, 농민운동, 교육운동 등 다양한 운동과 연계돼 들불처럼 번졌다.
이러한 정신의 원류는 이순신의 나라사랑과 불의에 항거했던 의사(義士) 허사겸(許士謙)의 정신과도 맥이 닿아 있다. 완도 가리포 농민항쟁은 가렴주구(苛斂誅求)를 일삼던 첨사 이상돈의 학정(虐政)에 항거했던 봉기였다. 이상돈은 가혹한 폭정의 대명사였다. 그는 사익에 눈이 멀어 소나무를 베어 배를 만들었다. 선정을 베풀어야 할 수령이 오히려 민초를 착취하고 학대했으니 원성이 자자했음은 물론이다.
마광남 청해진선박연구소장의 안내에 따라 봉기가 발발했던 곳을 둘러본다. 마 소장은 “이곳 첨사의 품계가 높은 것은 서남해안과 제주해역을 방어하는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급한 대로 완도에는 배를 만드는 황장목(黃腸木)이라는 소나무가 많았다. 근동에 청해진 시대부터 배를 만들었던 부추언이라는 지명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마 소장은 “원래 황장목은 임금의 관을 만드는 데 쓰였던 질 좋은 소나무를 일컬었다. 가리포진은 노량해전 승전의 주역이 됐던 지역으로 궁궐에서 소요되는 나무나 선박을 건조하는 황장목이 많이 분포돼 있던 곳”이라고 설명했다.
이 지역(완도)에서 배를 만든 기록들을 살펴보면, 1460년 조전선(遭戰船) 100척을 만드는데 여러 고을에서 선장(船匠) 100명, 목장(木匠) 200명을 뽑아서 변산과 완도에 보내라는 기록이 있다. (국역왕조실록 세조 6년(1460) 7월 1일)
1883년(계미년) 11월 18일 자시(밤11시~오전 1시), 주모자인 허사겸은 허공을 향해 나팔을 불었다. 새벽녘 고요한 바다로 나팔 소리는 아스라하게 퍼져나갔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에 숨어 있던 군중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의 눈빛에는 더 이상 불의한 세상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결기가 깃들어 있었다. 마침내 ‘계미민요’(癸未民擾)의 의로운 불길이 가리진포에서 타올랐다.
“가리포주민의 재산과 생명, 처자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중이 일어나라. 이상돈을 잡아 완도에서 추방하고 이상돈에게 아부하고 이상돈의 손과 발이 되어 있는 관속들과 협잡배를 일망타진하기 위해서는 재산을 빼앗긴 사람, 맞아 병신 된 사람, 정조를 빼앗긴 부녀자들까지 11월 18일 석장리 모래밭에 모여라.”(장보고연구회 ‘의사 허사겸’, 2013, 인쇄메이드)
군주는 배와 같고 백성은 물과 같다. 물은 배를 띄우기도 하지만 배를 뒤집어엎기도 한다. 이른바 ‘君舟民水’(군주민수)다. 후한서에 나오는 그 말은 민심이 천심이고 백성의 뜻이 하늘의 뜻이라는 의미다. 바람이 불어 파도가 노하면 바다를 뒤엎는 것은 세상의 이치다.
허사겸을 비롯한 농민들은 빠르게 관아로 진입해 들어갔다. 최도일, 박의중, 최여집이 뒤를 따랐다. 그들은 무방비상태였던 옥문을 부수고 갇혀 있던 죄수들을 풀어주었다. 농민들은 벌벌 떨고 있는 첨사를 포박했다.
이튿날 첨사 이상돈은 군중들에 의해 원동 나루를 건너 달도로 유폐됐다. 이 과정에서 첨사와 관속들에게 수시로 수탈을 당했던 인근의 강진 사초리 주민들도 가세했다. 군중들은 동헌을 무너뜨리고 첨사를 잘못 보좌하고 탐학에 일조했던 하리들의 집을 무너뜨렸다.
새로운 첨사가 부임하기 전이라 가리포진은 다소 어수선했다. 농민들과 유지들은 도민대회를 열어 중지를 모았다. 그리고 향도청(鄕道廳)을 설치해 최여안을 향도 유사로 선정했다. 이어 박일지, 김보국, 조내익에게 각 부분을 맡겨 향촌 자치를 실시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들었다.
정영래 완도문화원장은 “향도청은 동학농민항쟁 초창기에 설치됐던 집강소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며 “주민들이 스스로 질서를 유지하고 수습하는 모습은 선진적인 자치제의 자질을 갖춘 증거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황이 빠르게 안정을 찾아가자 이내 피바람이 몰아쳤다. 조정은 장흥부사에게 사태의 진상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그 보고에 따라 항쟁 주동자인 허사겸을 전라병영으로 압송해 효수하라는 명이 떨어졌다. 가리포 주민을 대신해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허사겸에게 돌아온 것은 효수라는 참극이었다.
그러나, 허사겸은 누구에게도 희생의 몫을 돌리지 않았다. 모든 것을 스스로 안아 감내했다. 장흥부사에 이어 전라감사가 올린 장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많은 백성을 모아 감히 공동(恐動)할 계책을 부린 자는 첫째도 허사겸이고 둘째도 허사겸입니다.”
그렇게 허사겸은 자신의 죽음으로 많은 이들의 희생을 막았다. 결과적으로 민란은 허사겸 한 사람의 효수로, 나머지 사람들은 유배로 결정되면서 막을 내렸다. 물론 침탈을 일삼았던 첨사 이상돈은 의금부로 압송돼 국문을 당했고, 빼앗은 재물은 백성들에게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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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사겸의 사당인 창의사를 둘러보며 진정 의로웠던 그를 생각한다. 선생의 묘는 향토유적 제9호로 지정돼 있으며 매년 추모제를 개최한다. 지난 1965년 세운 추모비는 당시 폭정에 항거했던 허사겸을 기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1200년 전 장보고는 이런 말을 남겼다고 한다. “옛 사람들의 말에 의로움을 보고도 실행하지 않으면 용기가 없는 사람”이라고. 그러므로 허사겸은 진정 용기있는 의인의 표상이다.
/글·사진=박성천 기자 skypark@
/완도=정은조 기자·전남주재총괄본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