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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10> ‘게르니카’로 본 스페인 내전
충격과 공포 … 끓어오르는 분노 … 전쟁이 그린 참혹한 현실
2018년 10월 24일(수) 00:00
파블로 피카소가 1937년 스페인 북부의 소도시 ‘게르니카’에서 벌어진 전쟁 피해를 묘사한 작품 ‘게르니카’. 대표적인 정치예술 작품으로, 현재 스페인 마드리드의 국립소피아왕비미술센터에서 전시하고 있다.
지난 6일 찾은 스페인 마드리드의 ‘국립 소피아 왕비 예술센터’(Museo Nacional Centro de Arte Reina Sofia)에서는 라틴 문화 특유의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미술관 앞 광장에서는 탱고 음악에 맞춰 5살 여자아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춤을 추고 있었고 거리 예술가들은 관중이 있든 없든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오전 10시를 갓 넘긴 이른 시간이었지만 미술관 입구에는 관람객들이 길게 줄지어 있었다. X-레이를 통해 소지품을 검사받고 미술관에 들어서면 유독 2층(전체 5층)만 북적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옛 종합병원을 리모델링한 까닭에 미로처럼 얽힌 전시장들을 둘러보다 보면 사람들이 발길이 멈추는 곳이 있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화가’라고 불리는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스페인 내전’을 주제로 그린 대작 ‘게르니카’를 만날 수 있는 206-6 전시장이다.

전시장을 꽉 메운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맞닥뜨린 ‘게르니카’는 크기부터 압도적이었다. 그림(가로 7m70㎝x세로 3m50㎝)은 전시장 한쪽벽을 벽화처럼 가득 채우고 있다.

입체주의로 그려진 이 작품은 다른 피카소 작품과 달리 흑백이다. 작품을 찬찬히 관찰하다 보면 피카소가 왜 흑백으로 표현해야 했는지 그의 심정이 전달된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모습은 고통스런 얼굴이다. 작품 오른쪽에는 불이 난 집을 향해 한 사람이 두 팔을 들고 절규하고 있고 중앙 밑부분에는 부러진 칼을 든 병사가 쓰러져 있다. 사람들과 말은 왼편을 향해 달려가고 있고 등불을 든 여인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작품에서 느껴지는 참상은 맨 왼편에 서 있는 여인을 통해 절정에 이른다. 이 여인은 두 팔을 늘어뜨린 채 초점없는 눈빛을 한 아이를 안고 하늘을 향해 울부짖고 있다. 구체적인 묘사는 없지만 누구나 전쟁의 참상을 느낄 만큼 작품 전체에는 혼돈과 공포, 분노가 감돌고 있다.

‘게르니카’를 대하는 미술관측의 관리도 특별하다. 대개 1개의 전시장에 직원 1명이 자리하고 있지만 206-6번 전시장은 각 모퉁이 한명씩 직원 총 4명이 서있다. 살바도르 달리, 호안 미로 등 다른 대가들의 작품들은 플래시만 터트리지 않는다면 촬영을 허용하지만 206번 전시장에서는 카메라나 휴대전화를 눈높이로 가져가기만 해도 직원들에 의해 제지 당한다. 모두 게르니카를 오래 보존하기 위한 조치다.

피카소는 프랑스 파리와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오가며 작품 활동을 하던 중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기 2년 전인 1934년부터는 모국에 머물렀다. 1936년 군부 쿠데타로 내전이 일어났고 사회주의 정치 성향을 보였던 피카소는 정부측인 공화당을 지지하며 자연스레 우파 실세인 프랑코 전 총리의 반대편에 선다.

작품 ‘게르니카’를 감상하기 위해 미술관 입구에 길게 늘어선 관람객들.


내전이 한창인 1937년 1월 스페인 공화정부는 피카소에게 같은 해 5월 개막하는 파리 국제박람회 스페인관의 벽화 제작을 의뢰했다. 작품 주제를 고심하던 피카소는 4월27일자 신문을 통해 기가 막힌 소식을 접하게 된다. 전날 스페인 북부의 작은 도시 게르니카에 독일 나치군이 무차별 폭격을 감행해 민간인 수백명이 죽었다는 것이다.

당시 스페인 내전은 공화당을 소비에트 연방이, 우파 프랑코측을 나치와 이탈리아가 지원하는 양상이었다. 게르니카가 있는 바스크 지방은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었는데 독일이 프랑코를 지원하려 폭격한 것이다.

피카소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연필에 담았고 나흘 만에 스케치를 마쳤다. 파리에서 5월11일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6월4일 붓을 내려놓았다.

파리국제박람회에 출품된 ‘게르니카’는 사람들의 이목을 끈다. 작은 소도시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전지구적으로 반전 메시지를 전파했다.

작품을 본 나치 장교가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당신이냐?”고 묻자 피카소가 “아니다. 당신들이 그렸다”고 한 일화는 유명하다.

박람회가 끝난 후 피카소는 프랑코 독재 정권 치하 스페인에서 게르니카를 전시할 수 없다며 뉴욕 현대 미술관에서 대여 형태로 전시했다. 같은 시기 피카소 또한 미국으로 망명했다. 피카소는 미워했지만 그의 작품은 좋아했던 프랑코는 여러 차례 작품 반환을 요청했지만 모두 묵살 당했다.

피카소는 92세까지 장수했지만 그보다 11살 젊은 프랑코 또한 천수를 누렸다. 1973년 피카소가 세상을 떠난 이후 2년 후 프랑코가 뒤를 이었다. 40여년간 타국을 떠돌던 게르니카는 프랑코가 죽고난 이후에야 모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결국 피카소는 스페인의 민주화도, 고국에서 전시되는 게르니카도 보지 못한 채 생을 마쳤다.

/ kimyh@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



스페인 = 글 김용희·사진 김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