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李泌, 722~789)의 자는 장원으로 본적은 요동 양평이다. 당 현종, 숙종, 대종, 덕종 등 4대에 걸쳐 출사한 당 중기의 명신이다.

어려서 재주가 많고 민첩하기로 유명했다. 하루는 현종과 문인 재상 장열이 바둑을 두고 있었는데 장열이 그를 보고 방원동정(方圓動靜)이라는 시제를 주었다. 그는 “모난 것은 의(義)를 행함과 같고 둥근 것은 지(智)를 쓰는 것과 같으며, 움직임은 인재를 구하는 것과 같고 고요함은 뜻을 얻음과 같다”고 답해 재상을 놀라게 하였다. 현종은 그를 후일 숙종이 되는 충왕 이형의 놀이 친구로 삼았다. 충왕이 태자가 되자 조정으로 불러 교우 관계를 갖게 하였는데 태자는 그를 늘 선생이라고 불렀다. 훗날 장구령이 재상으로 있을 때의 일화다. 장구령은 중신 엄정지와 소성과 친했는데 아첨에 능한 소성을 더 가까이 하였다. 이를 지켜본 이필은 장구령에게 “재상께서는 평민 출신으로 입신하신 분인데 아부하는 인물만 좋아하면 되겠습니까?”라고 직언했다. 장구령이 정중히 사과했다.

안녹산이 난을 일으키자 현종이 장안을 비우고 사천으로 피난갔다. 태자 이형은 756년 감숙성 영무에서 숙종으로 즉위했고 내각격인 행재소(行在所)를 설치했다. 숙종이 재략이 뛰어나고 덕망이 있던 아들인 건녕왕 이담을 천하병마원수로 삼아 반군을 치도록 하였다. 이에 이필은 후일 대종이 되는 형 광평왕 이숙이 있는 점을 들어 반대했다. 건녕왕이 공을 세울 경우 형제간에 갈등이 심해질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숙종은 광평왕을 천하병마원수로 삼고 이필을 시모군국·원수부행군장사로 삼았다. 그는 황제에게 건의하기를 “청컨대 먼저 신과 광평왕이 논의한 후 조용히 상주하면 옳은 것은 행하고 옳지 않은 것은 그치십시오.” 그는 각지에서 날라온 상소문을 읽고 긴급한 것은 즉시 황제에게 전달되도록 하였다. 금문(禁門)의 자물쇠와 증명서를 맡아 관장하였다.

숙종이 언제 안녹산 군을 평정할 수 있을지 하문했다. 그가 답하기를 “안녹산은 얻은 황금과 비단을 모두 본거지인 범양으로 보내는데 이것이 어찌 천하에 웅거할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겠습니까?” 안녹산이 아들 안경서에게 피살되고 당 조정에서는 환관 이보국이 권세를 휘둘렀다. 건녕왕을 모함해 죽였다. 757년 황제가 장안으로 귀환했다. 이필은 이에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사의를 표하였다. “신이 폐하를 만난 것이 매우 일찍이고, 신에게 맡긴 것이 아주 무겁고, 신을 총애한 것이 아주 깊으며, 신의 공로가 매우 높고, 공직이 아주 기이하니 신이 머물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후 호남성 형산에 머물렀다.

숙종이 762년 병사하자 태자 이숙이 대종으로 즉위했다. 대종은 이필을 징소해 봉대전 옆에 서원을 짓고 조정의 중요 인사를 상의하였다. 대종이 말하기를 “짐은 경에게 술과 고기를 먹게 하며, 아내를 맞아들여 집안을 이루고 봉록과 작위를 받게 해 속인이 되게 하고 싶소.” 그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폐하께서는 어찌하여 반드시 신으로 하여금 그 뜻을 져버리도록 하시는 것입니까?” 황제는 범양 노씨의 딸을 아내로 삼도록 하였다. 장안 동쪽에 집을 하사하고 며칠은 집에서 며칠은 봉래원에서 머물도록 했다.

재상 원재가 정치를 전횡하면서 이필을 모함했다. “이필이 항상 친구들과 잔치를 하였고 환관 어조은과는 더불어 친하였으므로 마땅히 그의 역모를 알았을 것입니다” 황제는 그를 보호하기 위해 강서 판관으로 보냈다. 덕종 시대에도 원로의 역할을 수행했다. 덕종이 태자 이송 대신 조카인 서왕 이의를 총애해 태자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그가 덕종에게 “어찌 하나뿐인 아들을 의심하고 그 자리에 조카를 앉히려 하십니까?”고 직언하자 황제는 “대체 누가 아들보다 조카를 인정한단 말이오”라며 부인했다. 그는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폐하의 자손들이 천하를 호령하려면 반드시 적통(嫡統)을 지켜야 합니다”고 주장해 태자 폐위 건을 없도록 하였다. 그는 4대에 걸친 원로대신으로 지위가 재상에 이르렀다. 도가의 가르침에 도통했으며 후일 엄현후에 봉해졌다.

/박종구 초당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