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적 없는 마을, 한 사내가 바이크에서 내린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손목시계형 디바이스 ‘링커’에 대고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그는 12년 전, 마을 저택에서 벌어진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링커’ 너머에 있는 대장은 그에게 마을에 있는 뱀파이어를 모두 제거하라는 미션을 내린다. 12년 전, 그 사건 이후 인간이 마을에 산 적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이 글은 스낵북(snackbook.net)에 연재되고 있는 ‘Bloody Cry’의 일부이다. 인류와 뱀파이어 간에 벌어지는 생존 혈투를 다룬 판타지 소설이다. 작가는 장르소설창작모임 ‘분서갱유’ 회원 조재영(28)씨다.
“중학교 때부터 게임의 배경 스토리를 좋아했어요. ‘퇴마록’이라는 소설을 읽고 판타지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죠.”
조씨가 판타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2학년이 되던 해, 한 친구와 함께 판타지 소설을 웹사이트에 연재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학교 담임선생님은 적성을 살려 장르소설창작을 배울 수 있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진학을 권했다. 그는 광주대학교에 진학해, ‘분서갱유’ 초기 회원이 되었고, 초대회장에 이어 2년간 ‘분서갱유’를 이끌었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며 글을 쓰고 있다.
‘분서갱유’는 장르소설에 관심있는 작가지망생으로 구성된 광주대학교 장르소설창작모임이다. 2015년에 첫모임을 시작해 올해로 3년째다. 장르는 판타지, SF, 무협, 로맨스, 추리, 호러 등 다양하다. 열다섯 명의 회원들은 정해진 순번대로 독자와 작가의 입장으로 의견을 나눈다. 회원들은 일정기간 하나의 웹사이트를 정해 꾸준히 연재한다. 공동의 목표와 약속을 통해 긴장감을 놓지 않고 서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등장인물에 관해 연구할 때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분서갱유 회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광주대학교 1학년 장강현(20)씨는 장르문학이 가진 매력은 인물표현에 있다고 한다. 독특한 인물 설정으로 소설 전체에 흡입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 미국 근대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체역사물을 쓰고 있다.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을 예로 들며, 성격이 다른 주인공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분서갱유 모임이 큰 도움이 됐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본래 사기(史記)에 실린 말로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는다는 뜻이다. 회원들은 ‘분서갱유’의 ‘유(儒)’를 영어 ‘you’로 바꾸어 새로운 뜻을 만들었다. 책을 불사르고 글쓰기에 너 자신을 던지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자리에 모인 회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합평에 임했다.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은 모든 작가지망생들의 꿈이죠. 제가 소모임에 들어온 이유는 공모전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어디까지 와있는가 확인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박찬혁씨(20)는 순천에서 왔다. 어릴 때부터 장르문학을 좋아해 이 소모임에 들어오게 됐다. 박씨는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고 수용하는 장이라는 것이 분서갱유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순수예술문학이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장르문학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죠. 하지만 게임, 드라마, 영화 등 장르문학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는 순수예술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질 거예요.
김종주(21)씨는 분서갱유의 3대 회장이다. 그는 모임을 이끌어가면서 회원들에게 ‘읽히는 글’ 을 쓰도록 조언한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해 독자층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씨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곧 순수예술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며, 앞으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문학시장이 더욱 진보하기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글·사진=송재영 청년기자
tarajay@naver.com
-기억보관소 프로젝트 운영
-작가·필명 ‘타라재이’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머리와 어깨에 쌓인 눈을 털어내며 손목시계형 디바이스 ‘링커’에 대고 자신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그는 12년 전, 마을 저택에서 벌어진 일을 똑똑히 기억한다. ‘링커’ 너머에 있는 대장은 그에게 마을에 있는 뱀파이어를 모두 제거하라는 미션을 내린다. 12년 전, 그 사건 이후 인간이 마을에 산 적이 없었다는 말과 함께.”
“중학교 때부터 게임의 배경 스토리를 좋아했어요. ‘퇴마록’이라는 소설을 읽고 판타지 소설의 매력에 푹 빠졌죠.”
조씨가 판타지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 때였다. 2학년이 되던 해, 한 친구와 함께 판타지 소설을 웹사이트에 연재하며 본격적으로 소설가로서 꿈을 키우기 시작했다. 소문을 들은 학교 담임선생님은 적성을 살려 장르소설창작을 배울 수 있는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진학을 권했다. 그는 광주대학교에 진학해, ‘분서갱유’ 초기 회원이 되었고, 초대회장에 이어 2년간 ‘분서갱유’를 이끌었다. 졸업 후에도 꾸준히 모임에 참석하며 글을 쓰고 있다.
“등장인물에 관해 연구할 때 자신의 생각에 매몰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마다 분서갱유 회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것이 작업에 큰 도움이 됩니다.”
광주대학교 1학년 장강현(20)씨는 장르문학이 가진 매력은 인물표현에 있다고 한다. 독특한 인물 설정으로 소설 전체에 흡입력을 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1980년대 미국 근대역사를 기반으로 한 대체역사물을 쓰고 있다. 자신의 소설 속 인물을 예로 들며, 성격이 다른 주인공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분서갱유 모임이 큰 도움이 됐다.
‘분서갱유’(焚書坑儒)는 본래 사기(史記)에 실린 말로 책을 불사르고 선비들을 구덩이에 묻는다는 뜻이다. 회원들은 ‘분서갱유’의 ‘유(儒)’를 영어 ‘you’로 바꾸어 새로운 뜻을 만들었다. 책을 불사르고 글쓰기에 너 자신을 던지라는 뜻이다. 이름처럼 자리에 모인 회원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합평에 임했다.
“공모전에 당선되는 것은 모든 작가지망생들의 꿈이죠. 제가 소모임에 들어온 이유는 공모전 때문만은 아니에요. 제 자신이 다른 사람에 비해 어디까지 와있는가 확인하고,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죠.”
박찬혁씨(20)는 순천에서 왔다. 어릴 때부터 장르문학을 좋아해 이 소모임에 들어오게 됐다. 박씨는 같은 목표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 자신의 작품을 평가받고 수용하는 장이라는 것이 분서갱유의 장점이라고 강조했다.
“현재는 순수예술문학이 문학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어요. 장르문학은 마니아들의 전유물이었죠. 하지만 게임, 드라마, 영화 등 장르문학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들이 대중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어요. 앞으로는 순수예술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질 거예요.
김종주(21)씨는 분서갱유의 3대 회장이다. 그는 모임을 이끌어가면서 회원들에게 ‘읽히는 글’ 을 쓰도록 조언한다. 독자의 흥미를 유발해 독자층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김씨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우리나라도 곧 순수예술문학과 장르문학의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고 하며, 앞으로 새로운 상상력으로 문학시장이 더욱 진보하기 바란다는 말을 덧붙였다.
글·사진=송재영 청년기자
tarajay@naver.com
-기억보관소 프로젝트 운영
-작가·필명 ‘타라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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