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라는 단어는 참 치명적이다. 예술이든, 사랑이든, 활자이든 간에 그것에 젖거나 빠져들면 더 이상 옴짝달싹 할 수 없는 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무엇인가를 좋아하기는 하지만 탐닉하지 못하는 내게 한 ‘예술중독자의 삶’은 경이롭기만 하다.

지난 주말 광주극장에서 관람한 영화 ‘페기 구겐하임:아트 애딕트’가 그랬다. 전설적인 컬렉터 페기 구겐하임(1898∼1979)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멘터리영화는 말 그대로 ‘20세기 미술사’를 영화 한 편으로 요약해 한 순간도 놓치기 아까웠을 정도다.

타이타닉호 침몰로 사망한 부친에게서 거액을 상속받은 후 파리로 건너가 마르셀 뒤샹을 통해 미술에 입문하고, 런던에 화랑을 열어 본격적으로 작품을 수집했던 페기는 2차 세계대전 중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을 싣고 뉴욕으로 건너온다. 미술의 중심이 파리에서 뉴욕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다.

이때 페기는 막스 에른스트 등 유럽 작가들의 미국행을 도왔는데, 뉴욕 도착 후 영화에서 고백했듯 ‘지적인 미남’을 좋아해서 에른스트와 재혼한다. 인간의 잠재의식을 창의력의 근원으로 여겼던 초현실주의자 에른스트(1891∼1976)는 무의식에서 생겨나는 심상을 표현하기 위해 프로타주기법과 데칼코마니기법을 사용하기도 했던 작가.

에른스트의 작품 ‘셀레베스’(1921년 작)는 전형적인 ‘초현실주의풍’ 작품으로 엉뚱하고 설명할 수 없는 상황 속에 갖가지 사물들이 한데 뒤섞여 있다. 거대한 코끼리는 머리 없는 마네킹과 대면하고 있고 물고기가 헤엄치고 있는 하늘 등 그림 속 단서들은 관람자의 감상을 도와주지 않는다.

파괴와 파멸이 이어지는 전쟁을 겪으면서 고통스런 현실을 초월하고자 했던 당시 예술가들은 초현실주의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구절인 ‘해부대 위의 우산과 재봉틀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다운’(로트레아몽의 시 일부)이라는 표현처럼 ‘예기치 않은 아름다움’에서 위안을 구했던 것 같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