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폐쇄의 여파가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우리 학부모들에게까지 미칠 줄은 정말 몰랐다. 중·고등학교 입학식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교복 대란’이 우려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공단 내에서 생산되는 브랜드의 교복을 구매하는 학교는 전국적으로 한두 군데가 아닌 모양이다. 이 때문에 많은 학교에서 교복 구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공단 폐쇄가 이뤄지며 대부분의 입주 업체들은 북쪽의 공장에서 물품 회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엘리트 등 교복 브랜드에 납품하는 업체는 개성공단에 4곳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거의 물량을 가져오지 못했다.
우려되는 ‘교복 대란’에 딱히 대책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교복 물려 입기’나 ‘사복 착용 등교 허용’ 등이 고작이다. 신학기 학부모들의 사복 구입비 부담만 늘어나게 생겼다. 딱한 일이다.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잘한 일일까? 일단 국민 중 절반 이상(55%)이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잘못한 일’이라고 한 응답자는 33%였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사복 구입비 부담까지 미리 알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아니, 그랬다면 아마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잘한 일로 평가한 응답자 중 25%는 ‘강력·강경 대응해야 하고 계속 봐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정부 조치를 지지했다. 이번만큼은 북한에 ‘뽄때’(본때:본보기)를 보여 주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전라도 말로 ‘뽄때를 한번 보여 준다’ 함은 ‘다시는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도록 따끔한 맛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과연 개성공단 폐쇄라는 ‘따끔한 맛’을 보고서 다시는 핵실험 등의 ‘잘못’을 저지르지 않게 될 것인가. 불행히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말하자면 개성공단 폐쇄의 효과가 미미하거나 거의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정부의 논리와 고충은 이해하지만 실효성과 적절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는 연간 약 1억 달러의 현금이 사라진다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북한이라면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마간 타격은 있겠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혹독한’ 제재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폐쇄에 ‘감동’받아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지도 의문이다.” 이는 다른 데도 아닌,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는 한 신문의 사설이다.
이처럼 제재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 입주 기업들의 손실과 타격은 심각하다. 우선 입주 업체들의 피해 규모가 무려 조 단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이들은 오늘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구멍가게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때도 그에 필요한 행정 예고, 과정과 절차가 있는데 수만 명의 생계와 수백 개 업체의 존망이 걸린 결정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입주 업체 대표의 피맺힌 절규다.
정부가 하루 이틀이라도 먼저 공단을 닫는다고 알려 주었으면 물건이라도 들고 나왔을 텐데, 갑작스러운 통보에 모두들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지원 대책이랍시고 요란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 지난 2013년 공단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다 겪은 바다. 똑같은 정부고 똑같은 대책이다. 돈을 빌려준다고 하지만 사업을 못하면 갚을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럼 정부는 왜 입주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알려 주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했던 것은 우리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무사 귀환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을 최단기간 내에 안전하게 귀환시키기 위해 이번 결정 과정에서 사전에 알릴 수 없었고, 긴급조치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개성에 투자했던 124개 업체 대표와 임직원들·노동자들·기술자들, 거기에 5000개의 협력업체까지 12만 명의 밥줄이 끊어지게 됐는데, 고작 하시는 말씀이 무사 귀환을 위해 긴급조치가 불가피했다니. 당하는 사람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아버지가 대통령 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긴급조치’란 말이 딸인 당신의 입에서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에서도, 지나친 감상(感傷)일지 모르겠지만 섬뜩함을 느낀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일방적 근로자 철수 조치로 2013년 약 5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한 것을 빼고는 남북 관계의 숱한 부침(浮沈)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왔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조치’에서도 개성공단만큼은 예외였다.
당시 북한의 조치를 비난하며 “예측 가능한 공단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나? 바로 박 대통령 아니었던가. 그랬던 대통령과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국제 기준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개성공단 폐쇄는 충분한 협의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이번 결정이 단순히 ‘대통령의 진노 때문’이었을 것이란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레이저 눈빛’을 한번 발사하면 고위관료가 됐든 국회의원이 됐든 모두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는 말이 세간에 떠돌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빨간 줄을 긋고 새로 고쳐 쓴 것으로 알려진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성명’에도 “신뢰를 저버린 상대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진노’(震怒)란 ‘우레 같은 노여움’으로 하느님이나 혹은 과거 임금님의 격노(激怒)를 말할 때 쓰는 단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의 진노 때문에 한 나라의 정책이 결정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됐든 하루아침에 ‘남북 경협의 마지막 보루’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애써 쌓아 올린 화해와 협력의 ‘공든 탑’도 한순간에 붕괴됐다. 남북 관계는 얼어붙고, 개성공단 재가동은 이제 요원(遙遠)한 일이 됐다. 게도 잃고 구럭도 잃고, ‘통일 대박’은 커녕 ‘통일 쪽박’을 차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훗날 역사는 오늘의 이 사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궁금하다.
〈주필〉
갑작스럽게 공단 폐쇄가 이뤄지며 대부분의 입주 업체들은 북쪽의 공장에서 물품 회수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한다. 엘리트 등 교복 브랜드에 납품하는 업체는 개성공단에 4곳이 있었는데 이들 역시 거의 물량을 가져오지 못했다.
정부의 개성공단 폐쇄는 잘한 일일까? 일단 국민 중 절반 이상(55%)이 ‘잘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다. ‘잘못한 일’이라고 한 응답자는 33%였다. 하지만 학부모들이 사복 구입비 부담까지 미리 알았더라도 같은 결과가 나왔을까? 아니, 그랬다면 아마 부정적인 평가가 더 많아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잘한 일로 평가한 응답자 중 25%는 ‘강력·강경 대응해야 하고 계속 봐줄 수는 없다’는 이유로 정부 조치를 지지했다. 이번만큼은 북한에 ‘뽄때’(본때:본보기)를 보여 주겠다는 정부의 의도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논리와 고충은 이해하지만 실효성과 적절성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개성공단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는 연간 약 1억 달러의 현금이 사라진다고 핵과 미사일 개발을 포기할 북한이라면 문제가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이다. 얼마간 타격은 있겠지만 정부가 기대하는 ‘혹독한’ 제재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개성공단 폐쇄에 ‘감동’받아 중국이 강력한 대북 제재에 동참할지도 의문이다.” 이는 다른 데도 아닌, 보수언론으로 분류되는 한 신문의 사설이다.
이처럼 제재 효과는 미미할 것으로 보이는 반면, 우리나라 입주 기업들의 손실과 타격은 심각하다. 우선 입주 업체들의 피해 규모가 무려 조 단위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졸지에 날벼락을 맞은 이들은 오늘도 피눈물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구멍가게에 영업정지 명령을 내릴 때도 그에 필요한 행정 예고, 과정과 절차가 있는데 수만 명의 생계와 수백 개 업체의 존망이 걸린 결정을 그렇게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볼 때 우리가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를 생각하게 됩니다.” 어느 입주 업체 대표의 피맺힌 절규다.
정부가 하루 이틀이라도 먼저 공단을 닫는다고 알려 주었으면 물건이라도 들고 나왔을 텐데, 갑작스러운 통보에 모두들 빈손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뒤늦게 지원 대책이랍시고 요란하지만 별 의미가 없다. 지난 2013년 공단이 중단되었을 때 이미 다 겪은 바다. 똑같은 정부고 똑같은 대책이다. 돈을 빌려준다고 하지만 사업을 못하면 갚을 수 없는데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럼 정부는 왜 입주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가 예상되는데도 미리 충분한 시간을 두고 알려 주지 않았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이에 대해 “무엇보다 최우선으로 했던 것은 우리 기업인과 근로자들의 무사 귀환이었다”고 말했다. “우리 국민들을 최단기간 내에 안전하게 귀환시키기 위해 이번 결정 과정에서 사전에 알릴 수 없었고, 긴급조치가 불가피했다”는 것이다.
개성에 투자했던 124개 업체 대표와 임직원들·노동자들·기술자들, 거기에 5000개의 협력업체까지 12만 명의 밥줄이 끊어지게 됐는데, 고작 하시는 말씀이 무사 귀환을 위해 긴급조치가 불가피했다니. 당하는 사람들로서는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아버지가 대통령 하던 시절, 많은 사람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긴급조치’란 말이 딸인 당신의 입에서 그야말로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에서도, 지나친 감상(感傷)일지 모르겠지만 섬뜩함을 느낀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일방적 근로자 철수 조치로 2013년 약 5개월 동안 가동을 중단한 것을 빼고는 남북 관계의 숱한 부침(浮沈) 속에서도 명맥을 유지해 왔다. 북한의 천안함 폭침에 따른 ‘5·24 조치’에서도 개성공단만큼은 예외였다.
당시 북한의 조치를 비난하며 “예측 가능한 공단으로 만들어가야 한다”고 말했던 사람이 누구였나? 바로 박 대통령 아니었던가. 그랬던 대통령과 정부가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을 그야말로 일방적으로 선언한 것은 ‘국제 기준으로도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그러니 개성공단 폐쇄는 충분한 협의 과정 없이 즉흥적으로 결정된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만든다. 그건 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닌 것 같다. 이번 결정이 단순히 ‘대통령의 진노 때문’이었을 것이란 지적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걸 보면.
그렇지 않아도 대통령이 ‘레이저 눈빛’을 한번 발사하면 고위관료가 됐든 국회의원이 됐든 모두가 사시나무 떨듯 떨며 그 자리에서 얼어붙는다는 말이 세간에 떠돌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빨간 줄을 긋고 새로 고쳐 쓴 것으로 알려진 ‘개성공단 가동 전면 중단 성명’에도 “신뢰를 저버린 상대에 대한 분노가 담겼다”는 것이 청와대 관계자의 말이다.
‘진노’(震怒)란 ‘우레 같은 노여움’으로 하느님이나 혹은 과거 임금님의 격노(激怒)를 말할 때 쓰는 단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단지 대통령 한 사람의 진노 때문에 한 나라의 정책이 결정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찌 됐든 하루아침에 ‘남북 경협의 마지막 보루’는 맥없이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애써 쌓아 올린 화해와 협력의 ‘공든 탑’도 한순간에 붕괴됐다. 남북 관계는 얼어붙고, 개성공단 재가동은 이제 요원(遙遠)한 일이 됐다. 게도 잃고 구럭도 잃고, ‘통일 대박’은 커녕 ‘통일 쪽박’을 차게 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훗날 역사는 오늘의 이 사태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지 궁금하다.
〈주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