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복면 금지법’을 둘러싼 대립으로 복면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는 것 같다. 현대인들은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의식하지 못한 채 일상이 기록되고 감시당하는 환경 속에서 살고 있다. 복면을 쓴다는 것은 이런 감시로부터 벗어나려는 소극적인 방어에서부터 출발했을 것이고 얼굴을 감추는 익명성 대신 과감한 표현의 자유를 얻으려는 심리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복면은 참으로 유쾌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락 가수를 꿈꾸었으나 뽕짝의 느낌이 있다는 이유로 트로트 가수로 데뷔하게 된 주인공이 자존심 때문에 복면을 쓰고 ‘이차선 다리’를 부르던 영화 ‘복면 달호’는 참 인상적이었다. 아마 그 영화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으로 짐작하는데 최근 인기 TV 프로그램 ‘복면 가왕’도 매회 화제를 모으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복면의 익명성이 그동안 우리 눈을 가렸던 선입견을 벗어나게 해주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유럽 표현주의 화가의 선구자격인 벨기에 출신의 제임스 앙소르(1860∼1949)는 작품 속에서 다양한 가면의 세계를 표현했다. 작품 ‘가면이 있는 자화상’(1899년 작)은 한번 보면 잊혀지지 않을 만큼 강한 인상을 주는 그림이다. 타인들에 둘러싸여 내면의 고립감으로 번민하는 사람들의 사회적 성격을 분석한 사회학자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1950년 출간)이라는 개념이 출현하기도 전에 ‘군중 속의 고독’을 담고 있는 듯해 놀랍다.

앙소르는 주위 사람들, 특히 군중을 두려워했는데 인간 본성의 심연을 파헤쳐보면 부드러운 외관 밑에 잔인함이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작품 속 작가는 홀로 가면을 쓰지 않은 채 무엇이 가면이고 무엇이 내면일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이 가면들을 그의 다면적인 내면을 담은 페르소나로 읽는 이들도 있지만 앙소르의 고백을 되새겨보면 그것은 평론가들의 해석일 뿐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가면이 지배하는 고독한 세계, 온갖 폭력과 빛과 위엄의 세계를 되도록 가까이 하지 않으려 했다….”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미술사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