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비야! 낼모레가 거시기다만/ 교통이 아주 거시기할 모양이니/ 댕겨갈라고 너무 거시기하지 마라./ 니 엄니나 나는 다 거시기하다./…/ 요즘 쪼매 거시기한 줄 안다만/ 사람 사는 게 다 거시기한 것이니까/ 너무 거시기하지 말거라./ 곧 거시기한 날이 올 것이다./ 그럼 항상 거시기해라.” (하봉채의 ‘소통’)
시골에 사는 부모의 마음이 거시기라는 말 한마디에 잘 나타나 있다. ‘귀신도 모르는 게 거시기’라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은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명절만 되면 꽉 막히는 귀성길. 올해 역시 서울에서 광주까지 여덟 시간 이상 걸리기도 했다. 그 고생길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은 그리운 고향을 찾아 집을 나선다. 하지만 자식들이 고생할 일을 생각하면 부모의 마음은 안쓰럽기만 하다. 그래 보고 싶은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하는 말이 “댕겨 갈라고 너무 거시기 하지 말라”는 것이다.
올 설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 이른바 귀성(歸省)이다. 여기에서의 ‘귀’(歸)는 ‘돌아간다’는 뜻이요 ‘성’(省)은 원래 사소한(少) 물체까지도 본다(目)는 것이니 ‘살피다’라는 뜻의 한자다.
그렇다면 ‘귀성’은 고향에 돌아가 무언가를 살핀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살핀다는 것일까? ‘귀향성친’(歸鄕省親)과 ‘귀향성묘’(歸鄕省墓)의 준말이 귀성(歸省)이라는 데 해답이 있다. 고향에 돌아가(歸鄕) 부모를 살피며(省親) 조상의 산소를 살피는(省墓) 것이 곧 귀성인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어쩌다 한 번일지라도 부모님을 살피기 위해 고향에 간다. 하지만 부모님은 오히려 자식들을 위로한다. 너희들 고생하는 것 다 안다면서 “요즘 쪼매 거시기하지만 사람 사는 게 다 거시기한 것이니까 너무 거시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삶이 고달플수록 우리는 그런 따뜻한 위로를 받기 위해 고향을 찾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는 게 다 거시기하다지만
올해도 고향은 예전 그대로였다. 마을마다 귀성 환영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누구누구 손자가 로스쿨에 합격했다느니, 누구누구 아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내용도 바람에 나부꼈다. 집집마다 웃음소리와 함께 기름진 음식 냄새가 솔솔 담을 넘었다.
유난히도 길었던 설 연휴를 보내고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을미년(乙未年)이 시작됐으니 정초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새해 다짐을 한다 한들 누가 뭐라겠는가. 또한 진짜 양의 해는 설을 쇠고 나서부터라 할 것이니, 새삼스레 지금 양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크게 허물하지 않으리라 믿어 보는 것이다.
양은 발톱이 있으나 할퀴지 않고, 이빨이 있어도 물어뜯지 않으며, 뿔이 있어도 공격하지 않는다. 양은 또 늘 무리 지어 사는데 거기엔 배려와 존중이 있으며 그게 없으면 결코 사랑이 뿌리내릴 수 없다. 우리네 삶도 그처럼 되었으면 좋으련만….
한자에서 아름다울 ‘미’(美)는 양 ‘양’(羊) 자와 큰 ‘대’(大) 자가 합쳐진 것이다.(원래는 양을 잡아 머리 위에 치켜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군침이 돌 만큼 맛있다 혹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허신이 만든 문자 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아름답다는 말은 곧 맛있다는 말과 통하는데 양이 크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풀이하고 있다.
옳을 ‘의’(義) 자 역시 양과 관련이 있다. 양 ‘양’(羊) 자와 나 ‘아’(我) 자의 결합이다. 창 혹은 칼을 들고 제대로 옳게 잡아 반듯하고 고르게 고기를 잘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착할 ‘선’(善)은 또 어떤가.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는 뜻이 됐다.
상서로울 ‘상’(祥) 자도 재미있다. 신(神)을 의미하는 ‘시’(示) 자와 ‘좋다’는 뜻을 가진 ‘양’(羊)으로 이루어졌으니 신이 내려 주는 좋은 일 곧 행복을 뜻한다.
양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한 고조 유방이 꾼 양 꿈이 그 예다. 유방은 한나라를 세워 왕이 되기 전, 큰 양을 잡자마자 뿔을 뽑고 꼬리를 잘라버리는 꿈을 꾸었다. 주위에서는 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 ‘양’(羊) 자에서 뿔과 꼬리를 없애면 임금 ‘왕’(王) 자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항우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거시기한 날 더 많아졌으면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꿈에서 양을 잡으려는데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무학대사가 해몽을 했는데 역시 왕이 될 조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이성계 추종 세력이 중국 고사의 권위를 빌어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꾸며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한데 이 속담은 해가 바뀌면서 “가는 말(馬)이 고와야 오는 양(羊)이 곱다”라는 우스갯소리로 변형됐다. 갑오년 ‘말의 해’가 워낙 험했기에 을미년 ‘양의 해’도 곱게 지나가겠느냐는 걱정과 우려가 담긴 것이다.
얼마 전 광주 대인시장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의 초대 문구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을미년(乙未年)을 맞아 모든 을(乙)과 미생(未生)들을 희망의 해(年)로 초대합니다.” 이 멋진 문구처럼, 갑의 횡포가 횡행했던 지난해 갑오년과는 달리 올해 을미년은, 을의 수난이 더 이상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보면 지난해에는 사슴을 놓고 기어이 말이라 우기거나(指鹿爲馬), 양 고기를 걸어놓은 채 개고기라 속이는(羊頭狗肉) 일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양의 해인 올해엔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지’라는 노랫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순한 양이 되어, 풀밭 같은 너른 가슴에서 맘껏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 양(羊)을 품고 있는 ‘선’(善)과 ‘미’(美) 그리고 ‘의’(義) 자처럼, 모두들 착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의롭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다 거시기한 것이라지만 상서로울 ‘상’(祥)으로 가득한, 거시기한 날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시골에 사는 부모의 마음이 거시기라는 말 한마디에 잘 나타나 있다. ‘귀신도 모르는 게 거시기’라지만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은 이 말 한마디면 충분하다.
올 설에도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찾았다. 이른바 귀성(歸省)이다. 여기에서의 ‘귀’(歸)는 ‘돌아간다’는 뜻이요 ‘성’(省)은 원래 사소한(少) 물체까지도 본다(目)는 것이니 ‘살피다’라는 뜻의 한자다.
그렇다면 ‘귀성’은 고향에 돌아가 무언가를 살핀다는 것 아닌가. 도대체 무엇을 살핀다는 것일까? ‘귀향성친’(歸鄕省親)과 ‘귀향성묘’(歸鄕省墓)의 준말이 귀성(歸省)이라는 데 해답이 있다. 고향에 돌아가(歸鄕) 부모를 살피며(省親) 조상의 산소를 살피는(省墓) 것이 곧 귀성인 것이다.
사는 게 다 거시기하다지만
올해도 고향은 예전 그대로였다. 마을마다 귀성 환영 플래카드가 펄럭였다. 누구누구 손자가 로스쿨에 합격했다느니, 누구누구 아들이 박사학위를 취득했다는 내용도 바람에 나부꼈다. 집집마다 웃음소리와 함께 기름진 음식 냄새가 솔솔 담을 넘었다.
유난히도 길었던 설 연휴를 보내고 우리는 이제 일상으로 돌아왔다. 비로소 을미년(乙未年)이 시작됐으니 정초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새해 다짐을 한다 한들 누가 뭐라겠는가. 또한 진짜 양의 해는 설을 쇠고 나서부터라 할 것이니, 새삼스레 지금 양에 관한 이야기를 늘어놓아도 크게 허물하지 않으리라 믿어 보는 것이다.
양은 발톱이 있으나 할퀴지 않고, 이빨이 있어도 물어뜯지 않으며, 뿔이 있어도 공격하지 않는다. 양은 또 늘 무리 지어 사는데 거기엔 배려와 존중이 있으며 그게 없으면 결코 사랑이 뿌리내릴 수 없다. 우리네 삶도 그처럼 되었으면 좋으련만….
한자에서 아름다울 ‘미’(美)는 양 ‘양’(羊) 자와 큰 ‘대’(大) 자가 합쳐진 것이다.(원래는 양을 잡아 머리 위에 치켜들고 있는 사람의 모습에서 군침이 돌 만큼 맛있다 혹은 아름답다는 뜻으로 의미가 확장된 것으로 보인다) 중국 한나라 때 허신이 만든 문자 해설서인 ‘설문해자’(說文解字)에도 “아름답다는 말은 곧 맛있다는 말과 통하는데 양이 크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풀이하고 있다.
옳을 ‘의’(義) 자 역시 양과 관련이 있다. 양 ‘양’(羊) 자와 나 ‘아’(我) 자의 결합이다. 창 혹은 칼을 들고 제대로 옳게 잡아 반듯하고 고르게 고기를 잘 나누는 행위를 말한다. 착할 ‘선’(善)은 또 어떤가. 양(羊)처럼 순하고 온순하며 부드럽게 말(口)하는 사람을 나타내어 ‘착하다’는 뜻이 됐다.
상서로울 ‘상’(祥) 자도 재미있다. 신(神)을 의미하는 ‘시’(示) 자와 ‘좋다’는 뜻을 가진 ‘양’(羊)으로 이루어졌으니 신이 내려 주는 좋은 일 곧 행복을 뜻한다.
양은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한 고조 유방이 꾼 양 꿈이 그 예다. 유방은 한나라를 세워 왕이 되기 전, 큰 양을 잡자마자 뿔을 뽑고 꼬리를 잘라버리는 꿈을 꾸었다. 주위에서는 왕이 될 꿈이라고 했다. ‘양’(羊) 자에서 뿔과 꼬리를 없애면 임금 ‘왕’(王) 자가 되기 때문이다. 과연 그는 항우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다.
거시기한 날 더 많아졌으면
비슷한 이야기가 우리나라에도 있다. 초야에 묻혀 지내던 이성계가 꿈에서 양을 잡으려는데 뿔과 꼬리가 몽땅 떨어져 나가는 것이었다. 무학대사가 해몽을 했는데 역시 왕이 될 조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는 이성계 추종 세력이 중국 고사의 권위를 빌어 역성혁명을 정당화하려는 의도에서 꾸며냈다고 볼 수도 있겠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속담이 있다. 한데 이 속담은 해가 바뀌면서 “가는 말(馬)이 고와야 오는 양(羊)이 곱다”라는 우스갯소리로 변형됐다. 갑오년 ‘말의 해’가 워낙 험했기에 을미년 ‘양의 해’도 곱게 지나가겠느냐는 걱정과 우려가 담긴 것이다.
얼마 전 광주 대인시장에서 보았던 한 전시회의 초대 문구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것 같다. “을미년(乙未年)을 맞아 모든 을(乙)과 미생(未生)들을 희망의 해(年)로 초대합니다.” 이 멋진 문구처럼, 갑의 횡포가 횡행했던 지난해 갑오년과는 달리 올해 을미년은, 을의 수난이 더 이상 없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돌아보면 지난해에는 사슴을 놓고 기어이 말이라 우기거나(指鹿爲馬), 양 고기를 걸어놓은 채 개고기라 속이는(羊頭狗肉) 일들이 그 얼마나 많았던가. 하지만 ‘며느리가 딸을 낳아도 구박하지 않는다’는 양의 해인 올해엔 제발 그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나는 네가 좋아서 순한 양이 되었지’라는 노랫말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순한 양이 되어, 풀밭 같은 너른 가슴에서 맘껏 뛰어 놀았으면 좋겠다. 양(羊)을 품고 있는 ‘선’(善)과 ‘미’(美) 그리고 ‘의’(義) 자처럼, 모두들 착하고 멋지고 아름답고 의롭게 살아가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사람 사는 게 다 거시기한 것이라지만 상서로울 ‘상’(祥)으로 가득한, 거시기한 날이 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