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2년 부산 비엔날레에서는 매우 뜻깊은 프로젝트가 열렸다. 고 오지호 화백(1905∼1982)과 그의 아들 오승윤(1939∼2006), 그리고 손자·손녀인 병재·수경 씨를 한자리에 초대한 것이다. ‘위대한 유산전’이라는 주제로 열린 프로젝트가 화제를 모은 건 고 오지호 화백 30주기를 맞아 3대에 걸쳐 화업을 이어가고 있는 오씨 일가의 예술세계를 조망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광주가 아닌 부산에서, 게다가 국내외 미술인들의 이목이 쏠리는 비엔날레기간에 개최된 것이다. 당시 매스컴을 통해 오 화백 일가의 ‘부산나들이’를 접한 기자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작 이들의 고향인 광주에선 특별한 30주기 추모행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 국립현대미술관(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을 찾은 기자는 2년 전의 ‘불편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현대미술관이 주최한 ‘명화를 만나다-근현대회화 100선’(2013년 10월29일∼2104년 3월30일) 때문이었다. 이 전시는 192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활동한 57명의 작품 가운데 100점(현대미술관 컬렉션)을 엄선, 한국 회화의 진수를 보여주는 자리다. 남도작가로는 의재 허백련, 남농 허건, 김환기, 오지호, 천경자 등이 포함됐다.

수많은 걸작들 가운데 오지호 화백의 ‘남향집’ (1939년 작), ‘처의 상’(1936년), ‘설경’(1971년) 앞에 선 기자는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다. 명작을 봤을 때의 벅찬 감동과는 별개로 착잡함이 밀려들었다. ‘남향집’ 이 국립 현대미술관으로 갈 수 밖에 없었던 지난 시간이 떠오른 것이다.

사실 ‘남향집’을 비롯한 오 화백의 작품 37점이 현대미술관에서 타향살이를 하게 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지난 1985년 오 화백의 유족들이 이들 작품을 전남도에 기증하려 했지만 당시 변변한 미술관이 없어 ‘서울’로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증 당시 현대미술관은 유족들에게 상설전시관 건립을 약속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대다수 작품은 지하 수장고에서 햇볕을 보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07년 본보를 통해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오지호 유작 돌려받자’라는 캠페인이 펼쳐졌지만 현대미술관의 외면으로 흐지부지된 상태다. 국가재산인 만큼 (광주에) 돌려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여기에는 광주시와 시립미술관의 무관심도 한몫했다.

오 화백의 ‘분신’들을 되돌려 받는 건 남도 미술뿐 아니라 한국미술의 뿌리를 찾는 것이다. 제자리를 찾지 못한 채 ‘낯선 곳’에서 떠돌고 있는 유작들의 설움을 이젠 끝내야 한다. 만약 반환이 어렵다면 영구임대 등을 통해 광주로 가져오는 지혜를 모아야 한다. 그것은 곧 거장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남향집’이 있어야 할 곳은 오화백의 예술혼이 살아 숨 쉬고 있는 이곳, 광주다.



〈편집부국장·문화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