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 세미레치 지역을 밤 8시께 빠져나오는 길은 그야말로 험로였다. 베스 싸티르 묘지언덕(고대 돌무덤 분포지)을 둘러보고 알마티로 돌아오는 여정, 때마침 쏟아진 소나기가 문제였다. 60∼70년대 신작로 같은 길을 달리던 승용차는 비에 잠긴 요철지대와 크고 작은 웅덩이를 피하기 위해 가다 서기를 반복했고 쉴새없이 출렁거렸다.
퇴로가 없는 험한 빗길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취재진은 시나브로 펼쳐진 밤 풍경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처럼 비가 개고 보석같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내려와 있었다. 4㎞ 떨어진 강 건너편에서는 먹구름 사이로 그림 같은 번개가 쉴새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기상현상 촬영가들이 포착하고 싶어하는 ‘자연의 불꽃놀이’였다.
“별이 총총한 하늘과 지표면을 갈라놓을 듯이 내리치는 번개를 동시에 볼 수 있는 곳, 이곳이 카자흐스탄”이라고 현지 가이드 로베르트 유가이(56)씨는 웃었다.
밤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카자흐스탄에는 플레이아데스 신화가 전해내려온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태양계에서 약 400광년 떨어져 있으며 수백개의 별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 가운데 6∼7개는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덕분에 신화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한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맨눈으로 보이는 이 별들을 우르케르(놀란 자들)라고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플레이아데스를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매(알키오네·마이아·엘렉트라·메로페·타이게테·켈라이노·스테로테페로)가 별이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영어권에서는 일곱 자매, 일곱 별, 뉴질랜드에서는 마타리키, 일본에서는 스바루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별이 뭉쳐있어서 좀생이별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로 이 별이 보이면 조상들은 월동준비를 했다.
카자흐스탄의 플레이아데스 신화는 유목의 대상인 말과 젖소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일종의 우화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이 해석한 계절의 변화, 별의 생성 등 자연관이 반영돼 있다.
영국의 인류·민속학자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말을 빌자면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의 오랜 흔적이자, 신화학자인 조셉캠벨이 설파한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하는 것”에 가깝다.
황량한 스텝지역의 눈덮인 겨울은 유목민과 그 가축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재앙이었다. 이런 토양에서 탄생한 신화 플레이아데스는 잔혹한 겨울이 단축되길 바라는 인간과 동물의 염원이 담겨 있다.
한편, 척박한 자연환경은 유목전사가 탄생하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강조한 “군인의 첫번째 자질은 피로와 궁핍을 견디는 불굴의 정신력이다. 용기는 그 다음이며, 고통과 빈곤 그리고 결핍이 뛰어난 군인을 만드는 최상의 학교다”와 딱들어 맞는 환경이다. 초원에서 죽음을 또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유목민들이 타고난 전사였던 이유다.
이 거친 사람들이 겨울이라는 고통스런 자연현상을 아름다운 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플레이아데스다.
동물들이 눈이 내린 초원에서 뜯어먹을 풀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겨울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8개의 아름다운 별, 플레이아데스는 혹독한 겨울을 부르는 전령이었다. 이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 기간은 곧바로 인간이나 동물에겐 사투의 계절인 겨울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땅에서 쉬는 8개월 동안 가축들은 혹한과 기아에 고통스러웠다.
추운 겨울에 치를 떨던 말과 젖소는 묘안을 짜낸다. “플레이아데스 별들을 파괴하면 땅에는 여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운명을 즐기게 될 거야. 그러니 플레이아데스를 죽이자”
플레이아데스 자매들을 죽이자고 말과 소는 의견일치를 봤다. 말(馬)이 별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하자, 소가 이를 만류하고 나섰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젖소는 자매 별들이 한데 모여 잠을 자는 틈을 이용, 발굽으로 자매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젖소의 발길질을 피해 7개의 별이 무리지어 하늘로 날아올라간 것이다. 젖소의 발굽 가운데 갈라진 틈새를 통해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단지 숨진 별은 단 한 개 뿐이었다.
이 때부터 카자흐스탄의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4월까지 7개월 동안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소가 단지 별 한 개만을 해치운 탓에 8개월 동안 이어지던 겨울이 단 1개월 줄었다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가 가까이 보이면 말과 소들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플레이아데스의 또 다른 버전은 6개 별들이 한데 모여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카자흐스탄 작가 아비셰프는 저서 ‘하늘의 비밀’에서 플레이아데스는 우르케르(놀란 자들)로 부른다고 했다.
일곱 도적(큰곰자리)이 플레이아데스를 덮치면 그들이 본능적으로 놀랐기 때문이다. 이들 7개 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처녀성으로, 나머지 별들은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여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
퇴로가 없는 험한 빗길에 몸도 마음도 지쳐갈 즈음, 취재진은 시나브로 펼쳐진 밤 풍경에 눈을 크게 뜰 수밖에 없었다. 거짓말처럼 비가 개고 보석같은 별들이 손에 잡힐 듯 내려와 있었다. 4㎞ 떨어진 강 건너편에서는 먹구름 사이로 그림 같은 번개가 쉴새없이 내리치고 있었다. 기상현상 촬영가들이 포착하고 싶어하는 ‘자연의 불꽃놀이’였다.
밤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카자흐스탄에는 플레이아데스 신화가 전해내려온다. 플레이아데스 성단은 태양계에서 약 400광년 떨어져 있으며 수백개의 별들로 이뤄져 있다. 이들 가운데 6∼7개는 육안으로 관측 가능한 덕분에 신화와 문학에서 자주 등장한다. 카자흐스탄 사람들은 맨눈으로 보이는 이 별들을 우르케르(놀란 자들)라고 부른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플레이아데스를 아틀라스와 플레이오네 사이에서 태어난 일곱 자매(알키오네·마이아·엘렉트라·메로페·타이게테·켈라이노·스테로테페로)가 별이 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영어권에서는 일곱 자매, 일곱 별, 뉴질랜드에서는 마타리키, 일본에서는 스바루라고 부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작은 별이 뭉쳐있어서 좀생이별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인 겨울철 별자리로 이 별이 보이면 조상들은 월동준비를 했다.
영국의 인류·민속학자 제임스 프레이저 경의 말을 빌자면 “자연계를 설명하려는 원초적인 서툰 노력”의 오랜 흔적이자, 신화학자인 조셉캠벨이 설파한 “피할 길 없는 운명에 순종하는 것”에 가깝다.
황량한 스텝지역의 눈덮인 겨울은 유목민과 그 가축들에겐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재앙이었다. 이런 토양에서 탄생한 신화 플레이아데스는 잔혹한 겨울이 단축되길 바라는 인간과 동물의 염원이 담겨 있다.
한편, 척박한 자연환경은 유목전사가 탄생하는 토양이 되기도 했다. 나폴레옹이 강조한 “군인의 첫번째 자질은 피로와 궁핍을 견디는 불굴의 정신력이다. 용기는 그 다음이며, 고통과 빈곤 그리고 결핍이 뛰어난 군인을 만드는 최상의 학교다”와 딱들어 맞는 환경이다. 초원에서 죽음을 또 하나의 삶으로 받아들이며 살아온 유목민들이 타고난 전사였던 이유다.
이 거친 사람들이 겨울이라는 고통스런 자연현상을 아름다운 별 이야기로 풀어낸 것이 플레이아데스다.
동물들이 눈이 내린 초원에서 뜯어먹을 풀을 찾지 못하게 되는 겨울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8개의 아름다운 별, 플레이아데스는 혹독한 겨울을 부르는 전령이었다. 이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휴식을 취하는 기간은 곧바로 인간이나 동물에겐 사투의 계절인 겨울의 시작이었다. 이들이 땅에서 쉬는 8개월 동안 가축들은 혹한과 기아에 고통스러웠다.
추운 겨울에 치를 떨던 말과 젖소는 묘안을 짜낸다. “플레이아데스 별들을 파괴하면 땅에는 여름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고,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운명을 즐기게 될 거야. 그러니 플레이아데스를 죽이자”
플레이아데스 자매들을 죽이자고 말과 소는 의견일치를 봤다. 말(馬)이 별들을 죽이겠다고 선언하자, 소가 이를 만류하고 나섰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젖소는 자매 별들이 한데 모여 잠을 자는 틈을 이용, 발굽으로 자매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젖소의 발길질을 피해 7개의 별이 무리지어 하늘로 날아올라간 것이다. 젖소의 발굽 가운데 갈라진 틈새를 통해 빠져나와 위기를 모면한 것이다. 단지 숨진 별은 단 한 개 뿐이었다.
이 때부터 카자흐스탄의 겨울은 10월 중순부터 4월까지 7개월 동안 이어지게 됐다고 한다. 소가 단지 별 한 개만을 해치운 탓에 8개월 동안 이어지던 겨울이 단 1개월 줄었다는 것이다. 플레이아데스가 가까이 보이면 말과 소들이 두려워 몸을 사리는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플레이아데스의 또 다른 버전은 6개 별들이 한데 모여 있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다. 카자흐스탄 작가 아비셰프는 저서 ‘하늘의 비밀’에서 플레이아데스는 우르케르(놀란 자들)로 부른다고 했다.
일곱 도적(큰곰자리)이 플레이아데스를 덮치면 그들이 본능적으로 놀랐기 때문이다. 이들 7개 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것은 처녀성으로, 나머지 별들은 처녀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모여있다는 것이다.
/카자흐스탄=윤영기기자 penfoot@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