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뭘 드릴까요.” “망고하고 파타타스, 오탑(필리핀 전통과자) 주세요.”
지난 8일 일요일 오후 화순 향청리 동남아 전문 식료품 가게 ‘마부하이’에 외국인 노동자 대여섯명이 들어섰다. 그들은 ‘고국의 향수’를 찾아 망고·오탑 등 과자와 통조림을 샀다. 요금이 할인되는 국제전화카드도 구입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필리핀어)로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10평 남짓한 구멍가게 ‘마부하이’의 간판이 거창하다. ‘International(인터내셔널) 마부하이’다. 간판이 말해주듯 주말과 휴일이면 마부하이는 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로 북적인다. ‘마부하이’는 필리핀어로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주인장은 필리핀 일루일루에서 시집 온 아이린 에프 가로체(여·38)씨다.
아이린씨는 “주말·휴일이면 마부하이는 동남아에서 시집 온 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랑방으로 변해요. 사정이 비슷한 이들의 마음의 고향인 거죠. 떠나온 고국 이야기도 하고 전통음식도 만들어 먹어요.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맘 편하게 놀아요.”
아이린씨는 남들은 쉬는 주말·휴일·연휴 때면 더 바쁘다.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뒷바라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일터가 쉬다보니 기숙사·식당이 덩달아 문을 닫았고, 이역만리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은 끼니 때울 곳조차 없어졌다. 시댁에 가려고했던 아이린씨는 어쩔 수 없이 마부하이의 문을 열게 됐다. 아이린씨는 이들의 먹을거리를 챙기고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함께 했다.
아이린씨의 친정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40분가량 떨어진 일루일루시 인근이다. 일루일루에서 승용차로 3시간30분 가량 더 들어가는 농촌마을이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루일루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백화점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종교의 인연으로 1997년 남편 김원중(48)씨를 만났다.
아이린씨가 사진으로 처음 본 김씨는 ‘완소남’이었다. (한국에선 전형적인 아저씨 몸매지만) 미모(?)의 김씨에 홀딱 반해 그 해 12월 김씨를 따라 화순으로 시집 왔다.
하지만 한국 살이는 쉽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고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 곤욕이었다. 농사 짓는 남편 김씨는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농삿일이 점차 손에 잡히면서 남편 김씨는 아이린씨를 위해 필리핀 작물인 꼬꾸라, 인팔리야(야자) 등도 심고 가꿨다. 점차 생활이 안정되고 아이린씨는 1998년에 귀화했다.
이들 부부는 1년에 한 번 꼴로 ‘친정 나들이’를 한다. 친정에 다녀올 때마다 필리핀 전통 먹을거리를 싸오고, 고향의 향수가 그리운 화순지역에 사는 동남아 이주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린씨 집에 모였다. 이주여성들은 ‘고국의 맛’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동남아 전통 식료품 가게 ‘마부하이’다.
“첫 아들을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는데 그때 정말 먹고 싶었던 게 망고였어요. 생각만해도 군침이 돌았지만 어디 사먹을 수 곳이 있었어야죠. 당시 우리 가게 같은 곳이 있었으면 남편을 졸라서라도 사먹었을텐데…” 아이린씨는 “한국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은 아들 선영(7)이다”며 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면 남편 김씨는 처갓집 가는 게 즐겁다고 했다. “국제 신사가 된 것 같다니까요. 한국에선 별 볼 일 없는 생활을 하지만 그곳에 가면 재벌 대접을 해주거든요.” 김씨는 처가에 간다는 핑계로 동남아 여행도 하고 관광도 할 수 있어 일석삼조란다.
아이린씨는 자칭 ‘다문화가정 상담사’이기도 하다. 12년동안 한국에 살다보니 다른 다문화가정들보다 먼저 고충을 겪었고, 다문화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가정형편도 속속들이 알게 돼 자연스럽게 대화창구가 됐다고 한다. 부부싸움 뒤 찾아온 이주여성의 한풀이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다독여준다.
아이린씨 부부는 이 참에 다문화가족 모임을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꾸려볼 생각이다. 모임 이름도 생각해 놨다. 일곱 빛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내일의 희망을 뜻하는 무지개를 따서 ‘무지개회’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아이들 교육 문제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들 선영이나 둘째 선호(3)가 다른 아이들보다 한글 깨치는 게 조금 늦기 때문이다. 이는 다문화가정 모두가 겪는 문제다.
김씨는 “예전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대부분의 정책들이 최근 만들어지다보니 10년 전 시집 온 초기 이주여성들에겐 맞지 않는 게 많다”고 말했다. 초기 이주여성들은 언어·문화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한 반면 이젠 아이들 교육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외국인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장소가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며 정부나 자치단체가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주길 바랐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지난 8일 일요일 오후 화순 향청리 동남아 전문 식료품 가게 ‘마부하이’에 외국인 노동자 대여섯명이 들어섰다. 그들은 ‘고국의 향수’를 찾아 망고·오탑 등 과자와 통조림을 샀다. 요금이 할인되는 국제전화카드도 구입했다. 그리고 무슨 말인지 모를 말(필리핀어)로 주인과 대화를 나눴다.
10평 남짓한 구멍가게 ‘마부하이’의 간판이 거창하다. ‘International(인터내셔널) 마부하이’다. 간판이 말해주듯 주말과 휴일이면 마부하이는 이주여성과 외국인 노동자로 북적인다. ‘마부하이’는 필리핀어로 ‘안녕하세요’, ‘환영합니다’, ‘부자되세요’라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주인장은 필리핀 일루일루에서 시집 온 아이린 에프 가로체(여·38)씨다.
아이린씨는 “주말·휴일이면 마부하이는 동남아에서 시집 온 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들의 사랑방으로 변해요. 사정이 비슷한 이들의 마음의 고향인 거죠. 떠나온 고국 이야기도 하고 전통음식도 만들어 먹어요. 엄마를 따라온 아이들도 맘 편하게 놀아요.”
아이린씨는 남들은 쉬는 주말·휴일·연휴 때면 더 바쁘다. 갈 곳 없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뒷바라지를 해야하기 때문이다. 지난 설 연휴엔 하루도 쉬지 못했다. 일터가 쉬다보니 기숙사·식당이 덩달아 문을 닫았고, 이역만리 동남아에서 온 노동자들은 끼니 때울 곳조차 없어졌다. 시댁에 가려고했던 아이린씨는 어쩔 수 없이 마부하이의 문을 열게 됐다. 아이린씨는 이들의 먹을거리를 챙기고 고국을 향한 그리움을 함께 했다.
아이린씨의 친정은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비행기로 40분가량 떨어진 일루일루시 인근이다. 일루일루에서 승용차로 3시간30분 가량 더 들어가는 농촌마을이다. 농촌에서 자란 그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일루일루에 있는 전문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했다. 대학 졸업후 백화점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 종교의 인연으로 1997년 남편 김원중(48)씨를 만났다.
아이린씨가 사진으로 처음 본 김씨는 ‘완소남’이었다. (한국에선 전형적인 아저씨 몸매지만) 미모(?)의 김씨에 홀딱 반해 그 해 12월 김씨를 따라 화순으로 시집 왔다.
하지만 한국 살이는 쉽지 않았다. 말이 통하지 않고 먹는 것도 입에 맞지 않아 곤욕이었다. 농사 짓는 남편 김씨는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그는 남편과 함께 농사를 지었다. 농삿일이 점차 손에 잡히면서 남편 김씨는 아이린씨를 위해 필리핀 작물인 꼬꾸라, 인팔리야(야자) 등도 심고 가꿨다. 점차 생활이 안정되고 아이린씨는 1998년에 귀화했다.
이들 부부는 1년에 한 번 꼴로 ‘친정 나들이’를 한다. 친정에 다녀올 때마다 필리핀 전통 먹을거리를 싸오고, 고향의 향수가 그리운 화순지역에 사는 동남아 이주여성들은 자연스럽게 아이린씨 집에 모였다. 이주여성들은 ‘고국의 맛’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동남아 전통 식료품 가게 ‘마부하이’다.
“첫 아들을 가졌을 때 입덧이 심했는데 그때 정말 먹고 싶었던 게 망고였어요. 생각만해도 군침이 돌았지만 어디 사먹을 수 곳이 있었어야죠. 당시 우리 가게 같은 곳이 있었으면 남편을 졸라서라도 사먹었을텐데…” 아이린씨는 “한국 생활의 가장 큰 기쁨은 아들 선영(7)이다”며 선영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반면 남편 김씨는 처갓집 가는 게 즐겁다고 했다. “국제 신사가 된 것 같다니까요. 한국에선 별 볼 일 없는 생활을 하지만 그곳에 가면 재벌 대접을 해주거든요.” 김씨는 처가에 간다는 핑계로 동남아 여행도 하고 관광도 할 수 있어 일석삼조란다.
아이린씨는 자칭 ‘다문화가정 상담사’이기도 하다. 12년동안 한국에 살다보니 다른 다문화가정들보다 먼저 고충을 겪었고, 다문화가정이 그리 많지 않다보니 가정형편도 속속들이 알게 돼 자연스럽게 대화창구가 됐다고 한다. 부부싸움 뒤 찾아온 이주여성의 한풀이를 들어주고 함께 울어주고 다독여준다.
아이린씨 부부는 이 참에 다문화가족 모임을 정기적이고 체계적으로 꾸려볼 생각이다. 모임 이름도 생각해 놨다. 일곱 빛깔이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발산하고 내일의 희망을 뜻하는 무지개를 따서 ‘무지개회’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도 어려움은 있다. 아이들 교육 문제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 아들 선영이나 둘째 선호(3)가 다른 아이들보다 한글 깨치는 게 조금 늦기 때문이다. 이는 다문화가정 모두가 겪는 문제다.
김씨는 “예전보다 다문화가정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긴 했지만 대부분의 정책들이 최근 만들어지다보니 10년 전 시집 온 초기 이주여성들에겐 맞지 않는 게 많다”고 말했다. 초기 이주여성들은 언어·문화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한 반면 이젠 아이들 교육문제에 부딪히고 있다는 것이다. 김씨는 “외국인 엄마와 아이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과 장소가 하루빨리 만들어졌으면 한다”며 정부나 자치단체가 보다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주길 바랐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