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이탈리아의 귀족가문 프란체스코 첸치에게는 베아트리체(1577∼1599)란 딸이 있었다. 어려서부터 빼어난 미모를 지녔던 베아트리체는 점점 자라면서 수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불을 지폈다. 방탕 귀족의 전형이었던 베아트리체의 아버지는 그녀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집안에 가두었다. 그리고 눈이 부실 만큼 아름다운 처녀로 자란 14살의 베아트리체를 겁탈하는 패륜을 저질렀다.
그날 이후 복수할 날만 기다렸던 그녀는 결국 아버지를 살해한 후 체포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사형집행이 있던 날, 그녀의 마지막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 전 이탈리아에서 구경꾼들이 피렌체로 모여들었다. 이들 중 한 사람이었던 화가 귀도 레니는 그녀가 단두대에 오르기 직전의 모습을 그렸다. 바로 그 유명한 ‘베아트리체 첸치’다.
‘적과 흑’의 프랑스 작가 스탕달(1783∼1842)은 1817년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타크로체 성당에서 귀도 레니의 ‘베아트리체 첸치’와 마주했다. 한동안 그림 앞에서 발을 뗄 수 없었던 그는 성당을 나오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뛰고 다리가 풀리는 이상징후를 경험했다.
그로부터 약 한달 간 이 알 수 없는 증상에 사로잡혔던 그는 자신의 일기에 그동안 겪었던 황홀함을 자세하게 적었다.
스탕달처럼 예술성이 뛰어난 유명 미술품을 감상한 사람들 가운데 순간적으로 가슴이 뛰거나 격렬한 흥분을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람들은 훌륭한 조각상을 보고 모방충동을 일으켜 조각상과 같은 자세를 취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그림 앞에서 불안과 평화를 동시에 느낀다. 미술작품뿐 아니라 문학작품이나 유명한 사람의 전기(傳記)를 읽고 난 후에도 이러한 증세를 겪기도 한다. 심리학자들은 이처럼 뛰어난 예술작품을 보고 일시적으로 흥분하는 현상을 ‘스탕달 신드롬’이라고 부른다. 이 현상을 처음으로 기록한 스탕달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베아트리체 첸치’ 처럼 시대를 뛰어넘는 걸작에게는 사람들을 끌어당기는 마력이 있다. 그것은 아마 붓질마다 스며있는 화가의 열정과 체온, 고뇌와 영혼이 한데 어우러지는 데서 오는 감동일 것이다. 미술작품 감상이야말로 가장 강렬하고 황홀한 체험이라고 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여름방학을 맞아 블록버스터 전시들이 여기저기서 열리고 있다. ‘오르세미술관전’에서 부터 ‘빛의 화가 모네전’ ‘비엔나미술사 박물관전’ 에 이르기까지 교과서에서만 봤던 명작들을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전시들이다. 서울에서 열린다는 것이 아쉽지만, 방학을 맞은 아이들과 원정관람에 나서는 것도 특별한 여름휴가로 기억될 듯 싶다.
좋은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어른들에게는 무뎌진 감성을 일깨우고, 아이들에게는 상상의 날개를 펴게 하는 소중한 기회다. 올 여름 ‘스탕달 신드롬’까진 아니더라도, 잠시나마 황홀한 체험에 빠지는 문화 나들이를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