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3월. 광주비엔날레 재단은 장장 6개월간의 산고 끝에 제6회 광주비엔날레(2006년 9월8∼11월11일)를 이끌 새 이사회 진용을 꾸렸다.
그런데 비엔날레 이사회에 새로 합류한 이사들 가운데 세인들의 시선을 끈 인물들이 있었다. 부산에서 활동하는 방송작가 K씨가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재단 명예이사장인 박광태 광주시장의 ‘권유’로 선임된 그는 경력면에서 누가 보더라도 ‘튀는’(?) 인물이었다. 광주 비엔날레의 최고 의사결정기구의 이사로서 국제 미술의 흐름과 안목을 갖춘 전문가라고 부르기에는 미흡했기 때문이다.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인지, 아니면 광주비엔날레 대한 애정이 없어서인지 K씨는 임기 2년동안 정기·임시 이사회 통틀어 2차례만 참석하는 무성의를 보였다. 그나마 1번은 신규 이사들에게 위촉장을 수여하는 자리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유령이사’나 다를 바 없었다.
지난 3월 2008 광주비엔날레를 앞두고 새로 구성한 이사회에도 K씨와 같은 인물들이 눈에 띄었다. 서울지역의 일부 이사들은 ‘바쁘다’는 등의 이유로 가뭄에 콩나듯 이사회에 얼굴을 내밀었다. 특히 신정아 가짜박사학위 파문으로 재단이 긴급 소집한 지난 18일 이사회에서도 빈자리가 더러 있었다. 이날 이사회는 가짜박사를 예술감독으로 선임한 데 대한 재단의 공식입장을 밝히는 중요한 자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이유 등을 내세워 불참한 것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가짜 박사 신정아씨 파문으로 창설 13년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오는 10월 개막하는 제2회 광주 디자인 비엔날레와 내년 9월 제7회 광주 비엔날레를 앞두고 이번 사태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한갑수 이사장을 비롯한 이사 27명 전원이 사퇴한 것이다. 재단은 이사진 총사퇴 직후 당연직 이사들로 구성된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를 발족, ▲종신이사제 폐지 ▲이사 정원 축소 ▲미술전문가 대거 영입 등을 통해 이사회 정상화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신규 이사진 선임과 이사장 선출은 매번 ‘인물난’을 겪을 만큼 상당한 시일이 소요돼 이사회가 본궤도에 오르기까지 쉽지 않을 전망이다. 게다가 비대위 당연직 이사들의 경우 광주시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어 자칫 광주시의 입맛에 맞는 인물들이 대거 발탁될 우려가 없지 않다.
재단은 이번 사태를 통해 이사회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은 만큼 학연, 인맥 위주의 인선관행에서 벗어나야 한다. 차제에 철저히 전문가 집단으로 꾸려 비엔날레의 ‘싱크탱크(think tank)’로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문성 못지 않게 책임감 있는 인물들을 영입해야 한다.
광주비엔날레가 이대로 추락하느냐, 부활하느냐는 이사회의 손에 달려있다. 이사회가 살아야 비엔날레가 산다.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