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버지들이 쿠르베(사실주의 대가)의 작품을 비웃었지만 오늘 우리는 그를 보며 경탄해 마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마네의 작품을 보며 욕을 하지만 훗날 우리 아들들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예술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1866년 에두와르 마네(1832∼1883)의 대표작 ‘피리부는 소년’이 살롱전에서 낙선하자 젊은 소설가 에밀 졸라는 일간지 ‘레벤느망’에 이같이 기고했다. 졸라는 살롱전 심사위원 28명을 일일이 거명하며 ‘걸작’을 몰라 본 이들의 안목을 거세게 비난했다.
19세기 중엽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대다수 화가들의 꿈은 국전(國展)인 살롱전(le Salon de Paris)에 작품을 내는 것이었다. 프랑스 왕립 미술아카데미가 주최하는 살롱전은 자신을 세상에 알리고 그림을 팔 수 있는 유일한 등용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보수성향이 강한 심사위원들은 실험정신이 번득이는 작품을 쳐주지 않았다. 색채의 미묘한 변화 속에 자연을 묘사한 마네의 ‘피리부는 소년’이나 ‘풀밭 위의 점심’이 낙선의 고배를 마신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공모전을 둘러싼 잡음은 시·공간을 초월한 듯 하다. 시대의 변화를 거스르는 구태의연한 잣대는 예나 지금이나 늘 도마에 오른다.
그러나 최근 ‘한국판 살롱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비리는 그 정도를 넘어서 충격을 주고 있다.
지난해 대한민국 미술대전 심사 때 후배·제자에게 돈을 받고 심사위원에게 압력을 넣어 작품을 입상시켜 준 혐의로 미술협회 전·현직 간부들이 최근 경찰에 적발됐다. 이들은 심사위원들을 모텔에 모아놓고 자신들이 골라놓은 출품작을 사진으로 보여준 후 외우게 한 다음 입상작을 ‘낙점’하도록 했다. 더욱이 이번 사건에 상당수 지역미술인들이 연루된 것으로 드러나 충격파가 더 하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번 사태를 접한 미술계의 반응은 냉담하다. 이유인즉슨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심사비리는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라는 것이다. 심사와 관련된 비리가 이번이 처음이 아닌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미술계에서는 “입선이 되려면 300만∼500만원, 특선이 되려면 1천500만∼2천만원을 줘야 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 정도로 뇌물 수수가 만연해 있다. 오죽했으면 ‘공모전=뇌물대전’이란 말까지 나왔겠는가.
현대미술의 최신 흐름을 따라가기는 커녕 잇단 비리로 미술계의 이미지만 실추시키는 공모전은 더 이상 존재의 이유가 없다. 등용문이 부족했던 시절이라면 몰라도, 화랑과 미술관이 그 기능을 하고 있는 오늘날에는 더욱 그렇다. 만약 이번에도 예전처럼 몇 마디 사과로 어물쩍 넘어간다면 안될 일이다. 공모전이 미술인들의 품으로 다시 돌아 올 수 있도록 새로운 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공모전이 신인발굴은 고사하고, 미술계의 ‘공공의 적’이 돼서야 되겠는가?
〈문화생활부장 jhpark@kwangju.co.kr〉